유다 백성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귀환은 총 3차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이 행한 일들이 다 다르죠.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의 인솔로 돌아온 제 1차 바벨론 포로귀환 때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죠. 온갖 방해꾼들의 훼방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20 넘는 과정을 거쳐서 완공한 성전재건의 역사였습니다. 물론 성전이 재건되긴 했지만 그 성전을 재건한 백성들의 심령은 재건되지 못한 상태였죠.
그와 같은 백성들의 심령을 재건한 이가 에스라였습니다. 서기관 겸 제사장인 에스라는 아론의 제 16대 손자로서 페르시아 땅에 태어났죠. 바로 그의 주도 하에 제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땅에 돌아와 유다 백성들의 심령을 말씀으로 재건하는데 중점을 두며 사역을 했죠. 하지만 그들의 삶에 철저한 회개의 삶이 곧장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제3차 포로귀환의 인솔자인 느헤미야의 주도로 성벽재건과 함께 백성들의 심령을 재건하는 일이 보다 확실하게 이루어졌죠.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둘러보고 온 방백들과 백성들을 향해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을 달다고 촉구했을 때 외부적인 방해 세력과 내부적인 문제에 부딪혔지만 그런 모든 과정들을 극복하고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게 되었죠. 그때 느헤미야는 온 백성들과 함께 에스라를 통해 모세의 율법을 낭독하고 강론하는 시간을 가졌죠. 그러자 온 백성들이 참회하며 언약백서답게 살고자 서약식까지 거행했죠. 그 후에 황폐화된 예루살렘 성읍에 밀알처럼 살 사람들을 선별했고 모두가 그들을 축복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예루살렘 성전에 나가 제사를 드리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점차 회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듯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과 성읍에 다시금 사람이 살게 되기까지는 그 험난한 과정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 일에 한 알의 밀알처럼 헌신하겠다고 결단한 이들이 있었기에 서서히 시온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요 하나님나라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이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더불어 한 알의 밀알처럼 헌신하는 이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뻐보시고 시온의 영광 부흥의 영광을 허락해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그런 은혜의 주인공으로 삼아주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한 이후 오랫동안 사람이 살 수 없었던 예루살렘 성안에 사람들을 정착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자원하는 사람들 10분의 1을 뽑아서 예루살렘 성읍안에 살도록 했던 것이죠.
오늘 읽은 본문 1-7절까지는 제1차 포로귀한 때 스룹바벨과 함께 온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의 계보가 나옵니다. 그들은 완전히 폐허가 된 조국의 어려운 시기에 돌아와서 이스라엘 신앙을 새롭게 회복하는데 밀알이 된 사람들이었죠. 본문 12-21절까지는 그들의 아들들 곧 조상들의 뒤를 이어 거룩한 역할을 감당한 후손들의 명단이 나오죠. 그만큼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명단을 다 기록한 느헤미야는 드디어 예루살렘 성벽의 봉헌식을 거행하게 되죠. 본문 27-29절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 들에서 모여 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모든 역경 가운데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드디어 성벽 봉헌식을 갖는 모습입니다. 성벽 봉헌식을 거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왜냐하면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훼방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한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들이 스마야 같은 제사장을 뇌물로 매수하여 거짓 예언을 하도록 한 일도 성령님의 은총으로 깨닫게 된 일도 있었기 때문이죠.
어디 그 뿐입니까? 성벽을 재건하고 마지막 문짝을 달았는데도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읍에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죠. 그런데 모세의 율법을 강론하자 온 백성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언약백성으로 살 것을 다짐했고, 그 후에 자발적으로 예루살렘 성읍에 들어가 살겠다는 사람들이 생겼죠.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 느헤미야나 제사장들이나 백성의 방백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겠습니까?
바로 그런 과정 속에서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런데 감사에는 개인적인 감사가 있고 공동체적인 감사가 있죠. 아픔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고통이 반으로 줄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포로 생활을 살다가 꿈에 그리던 고향 땅에 돌아왔으니 살아남았다는 감사와 선택받았다는 감사와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듣기만 했던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자기들 손으로 세웠다고 하는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일어났겠죠. 그것이 그 일에 참여한 각자 각자의 개인적인 감사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곁에 함께 동행한 사람들을 보면서 공동체적인 감사도 일어나는 것이죠. 5만명밖에 되지 않는 제1차 바벨론 포로귀환자들이 20년 넘는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성전을 재건했고, 또 세월이 한 참 지난 뒤에 여려 방해세력들의 문제를 극복해가면서 성벽을 재건했고, 그러면서 율법을 깨닫고 언약백성으로 살 것을 다짐하며 예루살렘 성읍에 들어가는 사는 이들이 있었죠. 그러니 그들이 어찌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끼며 감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도 또 하나님나라도 마찬가지죠.
본문 29절입니다.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 들에서 모여 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사방에서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 외곽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다는 말씀이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교회에서 후원했던 몽골의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몸담고 있는 몽골에는 ‘나담 축제’라는 게 있다고 하죠. 칭기스칸이 많은 부족들을 통일해 몽골제국을 이루고 나서 전 부족들을 모아 축제를 개최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나담 축제가 되면 전국에서 유목하는 몽골 사람들이 수도 울란바타르 외곽 들판에 모여서 각기 천막을 치고 함께 데려온 말과 가축들을 풀어 놓는다고 하죠. 그러면 황량하던 들판이 순식간 커다란 마을을 형성하게 되고 그때부터 감격의 축제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본문 속의 유다 백성들도 지금 그런 감격과 축제 속에서 성벽봉헌식에 참석하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와 같은 성벽봉헌식을 통해 또 하나의 중요한 깨달음은 ‘정결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30절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을 정결하게 하니라.” 봉헌식이란 뭔가를 완공하고 축하하는 의식이긴 하지만 이들의 봉헌식에는 정결의 의미가 스며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백성들 뿐만 아니라 성문과 성까지 다 정결하게 했다는 것이죠. 그만큼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을 구별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구별’이란 말이 곧 ‘거룩’이란 말과 같고 그것이 정결을 의미하는 것이죠. 내 거실과 주방과 침실에 내 차에 내가 행하는 모든 곳곳에 주님을 모시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사는 것, 그것이 곧 정결이자 구별이요 거룩한 삶인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을 통해 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봉헌식이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요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결단 예식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우상과 이방 풍습을 따랐던 과거의 죄악을 회개하고 주님의 자녀답게 우리의 거실과 주방과 침실과 차 안에까지 주님을 모시고 사는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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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무너졌던 성읍에 백성들이 모여 살면서 성벽의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개인적인 감사와 공동체의 감사가 교차되며 다들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오늘 저희들의 교회에도 하나님의 나라에도 이런 감사와 감격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전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세워나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 구별된 백성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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