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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이 아버지 웃시야의 행위대로(대하27:1-9)

by 똑똑이채널 202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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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남왕국 유다의 10번째 왕 웃시야에 관한 인생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왕으로서 그는 통치 전반기에 창대와 번영의 삶을 누렸죠. 그야말로 나라가 부국강병했고, 군사력도 어마어마했죠. 그런 창대와 번영의 통치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에는 실패와 좌절로 그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웃시야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선지자 스가랴의 묵시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는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힘입어 나라가 강성했었죠. 하지만 그 모든 창대와 번영, 나라의 강성대국이 자기 능력에서 비롯된 것인양 교만해졌을 때, 심지어 성전에 나가 분향하는 일까지 자신이 주도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문둥병에 걸렸고, 그때부터는 그는 죽을 때까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아들 요담으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했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만 천하에 알리신 일이었죠.

 

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의 11번째 왕 요담에 관한 통치 내용과 그 업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담은 이미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 아버지가 문둥병에 걸려 전면에 나서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나 자신에게 나라의 통치권을 맡겼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왕이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아버지가 죽은 뒤에 본격적으로 자신이 나서서 통치하게 된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 왕은 아들 요담에게 있어서 순면교사이면서도 반면교사의 모델이었죠.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삶을 살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할 때, 아버지에게 하나님께서 창대와 번영의 복을 주셨는지를 곁에서 보고 배웠죠. 반면에 아버지가 교만해 하나님보다 더 우위에 서려는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은 일도 뚜렷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통치하는가? 본문 1-2절을 보시겠습니다. 요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요 사독의 딸이더라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25살에 왕이 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이전부터 몇 년 동안 아버지 앞에서 왕 노릇을 한 요담이, 이제 아버지가 죽고 25살에 본격적으로 왕이 되어 16년을 다스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통치했는가?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다하고 밝혀줍니다. 그야말로 아버지의 진면목,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복을 준 그 진면교사의 본을 따라 아버지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모습이죠.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했다고 밝혀줍니다. 이유가 뭘까요?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벌이 생각나기에, 함부로 성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죠. 이른바 자신은 성전에 들어가지 않으므로서 제사장의 역할과 권위를 존중한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구별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만큼 왕으로서 정치적인 권력과, 제사장으로서 종교적인 영역을 구분하고 존중해 드림으로서, 아버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죠.

그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 모습입니까? 그렇게 요담이 나라를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며 자신의 한계를 지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시대를 이끌게 하십니까? 본문 3-5절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전 윗문을 건축하고 또 오벨 성벽을 많이 증축하고 유다 산중에 성읍들을 건축하며 수풀 가운데에 견고한 진영들과 망대를 건축하고 암몬 자손의 왕과 더불어 싸워 그들을 이겼더니 그 해에 암몬 자손이 은 백 달란트와 밀 만 고르와 보리 만 고르를 바쳤고 제이년과 제삼년에도 암몬 자손이 그와 같이 바쳤더라.”

역사의 교훈 속에서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취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담이 그렇게 아버지가 행한 선한 길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삶을 형통케 해 주셨고, 명성도 높여주시는 모습이죠. 그래서 요담은 성전의 윗문과 성벽과 성읍들을 건축했고, 망대도 건축하했고, 주변 국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모습이죠. 그래서 그 나라로부터 지속적인 조공을 받치게 한 모습입니다.

 

그가 그런 길을 어느 한 때만 그렇게 했는가? 아니죠. 본문 6절에서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이른바 그의 통치 말년까지 그 길을 계속 걸었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웃시야처럼 통치 전반기 때만 하나님을 경외한 게 아니라 그의 후반기에도 그는 계속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길을 좇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그의 나라를 점점 더 강성하게 해주셨던 것이죠. 이른바 처음보다 나 중이 더 좋은 사람, 처음보다 나중으로 갈수록 더 창대와 번영을 이룬 요담의 모습이라 할 수 있죠.

요담이 그런 은총을 누리게 된 것은, 그가 아버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자 애쓴 까닭이었죠. 어느 누가 그 많은 수고와 업적을 남기고서도 인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삶을 살고 싶어하겠습니까? 그것도 눈앞에서 목도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받은 벌을 기억하고서, 철저하게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죠. 그것이 곧 앞서 말씀한 것처럼, 성전에 들어가지 않는 모습, 그렇게 해서 제사장의 역할과 권위를 존중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구별해 섬긴 것이었죠.

물론 요담이 그렇게까지 성전을 두려워하고, 또 그렇게까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시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무결하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2절 마지막 부분은 뭔가 아쉬운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하는 말씀이죠. 이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한 열왕기하 1534-35절은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백성들 가운데 만연한 민간 신앙, 곧 우상 숭배의 근거지가 된 산당들을 정리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뒀다는 증언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우상숭배의 불씨와도 같은 모습이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두고는 결코 하나님만을 섬길 수 없는 노릇이죠. 다윗 왕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다의 왕이라면 모름지기 산당까지도 제거해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야 했죠.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왕의 역할이죠. 하지만 요담이 그런 모습까지는 보여주질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깊이 각인시켜야 할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역사의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하게 나아갔다는 점이죠. 선조의 대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지만, 선조의 대에 어긋난 길을 걸으면 축복의 길이 끊겨 저주의 길목에 들어선다는 것을 똑똑히 봤던 요담이 자신의 대에서 될 수 있는 한 아름답고 선한 길을 걸어갔기에, 그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창대와 번영의 삶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 앞에 더욱더 정직하게 행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겨서, 나 자신의 본분과 한계를 지킴으로 영육간에 점점 더 강해지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 은혜와 은총을 우리의 자녀들도 본받고 배워서 우리 시대보다 더 큰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아버지 웃시야가 죽고 요담이 전면에 나서 통치할 때,

역사적인 교훈을 잘 배워서 자기 시대에 적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길은 줄곧 좇아서 행했던 자요,

반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싫어하신 일은 멀리하며 철저히 자기 본분과 한계를 지켰던 자였습니다.

그를 통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창대하고 번영케 된 은혜를 누렸습니다.

오늘 저희들도 그의 모습처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중하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올곧게 섬길 때, 처음보다 나중이 더 심히 창대케 되는 은총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그런 축복의 통로가 우리의 후대에도 이어지도록 자녀들에게 진면교사로서의 신실한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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