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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아모스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여(암3:1-15)

by 권또또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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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덕 신부의 <토지와 경제정의>라는 책에서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대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는 예후의 혁명으로 많은 지주들이 숙청되었으나, 예후의 4대손 여로보암 2세가 장기 집권하면서 표면적으로 번영을 구가하는 동안, 그 이전 오므리 치하에서 맛보았던 사치 생활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되살아났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에 의해 뒷받침되었던 상류 계급의 모든 생활 방식-상아 궁전, 주연(酒宴), 과식, 향락과 음악에 대한 탐닉-은 농부 출신 선지자 아모스에 의해 성경에서 가장 신랄한 언어로 정죄 당했다. 글을 쓰는 선지자는 아모스가 처음이었지만, 그를 뒤이어 호세아, 미가, 이사야,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 같은 뛰어난 선지자들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이 번영의 한 복판에서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실로 우리나라의 현 주소라는 이야기입니다. 유사 이래 최고의 풍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을 향해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합니다.

본문 2절이 이렇습니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하나님은 모든 민족들 중에 오직 이스라엘만 아셨다고 말씀하죠. 하나님이 '아셨다'는 이 말은 이스라엘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사랑하시고, 교통하셨다는 뜻입니다. 주일날 나눈 말씀처럼 ‘안다’는 말씀은 ‘동거하다’ ‘동침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깊은 사귐을 통해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만민가운데 그런 대접을 받은 민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렇게 사랑하시고 택하신 것은 그들이 뛰어났거나 무슨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만민 중에서 가장 작은 족속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다른 민족의 노예로 살던 민족이었습니다. 창세기 18장 18-19절에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택하셨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기 위해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롭고 공의롭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 보좌의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는 이웃을 참소하지 않으며, 이웃에 대해 악을 행하지 않고 훼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리고 어려운 사람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 기꺼이 그들을 도울 때 그는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결국 ‘정의’는 이웃에 대한 올바른 행실,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삶과 긴밀히 연관 되어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이러한 진실한 자세는 경제적인 거래관계에서도 일관되어야 합니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추를 넣어서는 안 되며, 공평한 저울과 추, 그리고 공정한 되를 사용해야 합니다.(레19:36,신25:15,겔45:10)

‘공의(공평)’는 부당하고 불의한 강자와 불의한 세력을 가진 자들을 견제하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사법적인 정의를 말합니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진행하면 안 됩니다(신27:19). 탈취당한 사람을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렘22:3). 뇌물을 받지 말고,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그 사회는 ‘공의’가 실행되는 사회가 됩니다. 이 모든 사실을 살펴 볼 때 ‘정의’와 ‘공의’가 담고 있는 것은 실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며, 그것은 곧 우리의 삶 속에 구현되어야 할 이웃에 대한 긍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와 ‘공의’의 핵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긍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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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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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하여 ‘정의’와 ‘공의’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모습을 질책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잃어버렸기에 곧 죄악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2절 후반절을 통해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보응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9절을 눈여겨 보시면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하나님께서 아스돗과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사마리아 성중에 벌어지고 있는 횡횡한 ‘요란함’과 ‘학대’를 보도록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땅의 법과 질서가 파괴되었고, 사람의 것을 강탈하여 빼앗고 있는 모습, 권력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공갈협박하여 괴롭히는 상황을 들여다보라는 말씀입니다. 외부에서 들여다 볼 때에만 그것이 보다 정확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그런 정의가 무너지고 공의가 허물어진 것을 들여다보게 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모세를 통해 율법을 수여받았죠.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해야 하는지 율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받은 율법 속에는 예배의 형식에 관한 조문들만 있는 게 아니었죠. 그 속에는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이웃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 ‘사회법’과 ‘도덕법’에 관한 조항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삶 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이웃을 대하는 삶의 태도와 방식이 하나님께 산 제사가 된다는 로마서 12장의 말씀과 연결되는 것이죠.

그런데 어찌보면 한국교회,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의 범위’도 매우 좁게 생각해 왔죠.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만 말입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정의’와 ‘공의’를 잃어가는 사회로 향해 왔고, 그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할 말을 잃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풍요와 부요함, 성공에 대하여는 모두가 들썩이며 이야기하고 설교하고 관심을 기울여왔죠. 그렇기에 적어도 우리는 아모스서를 읽는 동안 아모스를 통해 선포한 하나님의 음성, 곧 ‘정의’와 ‘공의’를 잃고 사는 이 세대의 모습 앞에 정말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닐 것입니다. 더욱이 불의에 대해 무감각하며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의 사회는 아모스가 겪었던 그 시대나 우리 시대나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아모스를 통해 개인적인 신앙을 넘어 오늘 이 땅의 크리스천들에게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를 잃지 말고 살도록 당부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영적인 자산이요 영적인 가치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아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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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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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렇기에 우리의 주된 신앙의 관심이 무엇이었는지, 내 마음이 오직 내게로만 나와 관계된 주변 사람들에게만 쏠려 있었다면, 이 시간 이후부터는 그 관심을 사회로, 나라로, 그리고 세계로 확대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북한 사회를 향해,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갖는 그런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신음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에서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 말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탄식하시는 그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애타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을 깊이 아는 길이요,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구현하는 영적인 자산이 되는 길입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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