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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예레미야

바벨론의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렘52:1-34)

by 권또또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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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예례미야 52장은 지금껏 읽어 온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그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의 통치에 대한 최후의 말씀, 예루살렘 성읍의 함락과 파괴, 그리고 유다의 19번째 왕인 여호야긴에 대한 회복의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뉘는 본문은 1-11절까지 시드기야 왕에 대한 인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21살에 왕이 되어 11년 간 유다를 다스렸는데, 그의 어머니는 하무달, 곧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었습니다. 물론 시드기야가 본래 이름이 아니고 그의 본래 이름은 맛다냐 곧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19대 왕 여호야긴 다시 말해 왕이 된지 3개월만에 폐위된 여호야긴 대신에, 그의 삼촌인 맛다냐를 왕으로 앉히면서 ‘시드기야’란 이름을 쓰게 했죠. ‘시드기야’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는 뜻입니다.

그가 과연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는 이름대로 살았는가? 본문 2-3절입니다.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그의 삶은 두 문장이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것’, ‘바벨론 왕을 배반한 것’이 바로 그거죠.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예레미야가 여태껏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다 흘러버린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28:2),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b)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45:4)하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만약 그와 같은 하나님, 자신보다 크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는 결코 엉뚱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애굽을 의지한 채 애굽으로 도망치려다가 체포되어, 자식들이 자기 앞에서 처형당했고, 자신도 두 눈이 뽑혀 쇠사슬에 묶인 채 바벨론에 끌려갔죠. 그런 최후에 대해 본문 4-11절까지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지어준 ‘시드기야’란 이름, 곧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는 그 이름 그대로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파멸받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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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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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30절까지는 예루살렘 성읍이 파괴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을 시켜 예루살렘 성에 대해 두 가지 일을 벌이게 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을 불사르고 성벽도 다 헐어버리고 그 성전의 기물들까지 다 약탈토록 명령하고, 다른 하나는 유다의 백성들 가운데 가난한 백성은 그 땅에 남겨 둔 채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고 학식이 출중한 자는 다 포로로 끌고 가라는 것이었죠. 특별히 15절과 16절을 보면서 뭔가 깨닫는 게 있습니다.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여기에 나오는 바벨론의 총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이미 예레미야 39장 18절에 나온 인물입니다. 그때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나머지 백성들, 곧 가난한 백성들을 모두 모아 미스바 땅에 살면서 그다랴 총독을 세워서 그 땅을 통치하게 했죠. 그런데 또 다른 왕족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그다랴 총독을 암살하고, 그 일로 다시 보복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때 남은 유다 백성들 그 가난한 백성들은 그 땅을 박차고 애굽으로 도망치는데, 그때 예레미야와 서기관 바룩도 끌려가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바로 39장부터 45장까지 이어지는데, 그때 그들이 숨어 들어간 곳이 애굽의 고센 땅 근처였죠. 하나님께서는 그 미스바 땅의 남은 유다백성들로 하여금 머잖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삶의 근거지가 되도록 했고, 희망이 되게 배려하신 일이었는데, 그 무지한 백성들은 그것마다 발로 차버린 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8-30절 말씀을 보면 그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의 수를 밝혀줍니다.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총 세 차례에 걸친 포로유수 B.C. 597년에 3,023명, 586년에 832명, 그리고 582년에 745명 총 4600명이라고 밝혀주죠. 그런데 열왕기하 24장 14-16절에서는 B.C. 597년 다시 말해 1차 포로유슈기 때 끌려간 숫자만 해도 18,000명이죠. 그만큼 본문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포함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항복하지 않는 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처형당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버려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곳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입니다. 최초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이삭을 드리려다가 ‘여호와 이레’의 은총을 받은 곳이죠. 다윗은 그 산에다 수도를 세웠고, 솔로몬은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설했죠.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 군사 모두를 모두 하나로 모은 명실상부 하나님의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솔로몬 이후의 왕과 결탁한 성전의 제사장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은 그곳이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성전을 우상화했었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50년간 방치된 것이죠. 우리는 그 어떤 건물이나 업적보다도 오직 하나님만을 크신 하나님으로, 모든 것에 모든 것 되신 하나님만으로 바르게 섬길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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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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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1-34절은 제18대 왕이었던 여호야김에 이어, 제19대 왕으로 오른 여호야긴에 대한 내용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여호야김이 친애굽 정책을 펼치자 바벨론은 그를 포로로 끌고 감금시켜버렸고, 대신에 그의 형이자 요시야 왕의 정통성을 지닌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우죠. 그런데 그 여호야긴 왕도 친애굽정책을 펼치자 곧바로 3개월만에 폐위시키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가버리죠. 그리고 난 뒤에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던 것이고, 마지막 시드기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두 눈이 뽑혀 사슬에 매여 포로로 끌려간 것이죠.

그런데 왜 예레미야 마지막 부분을 여호야긴으로, 3개월 만에 폐위된 그의 활약을 할애하고 있는 걸까요? 여호야긴은 18살에 왕이 된 이후 37년 만에 바벨론의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의 나이 대략 55세쯤이죠. 그의 20대, 30대, 그리고 40대도 모두 감옥에서 산 것입니다. 왕이었던 그가 타국에 끌려가 죄수의 신분으로 모든 청춘을 다 보냈다면 그야말로 끝장난 인생이죠. 그런데 그렇게 마감할 줄 알았던 인생에 광명의 빛이 비추죠. 본문 32절에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그야말로 자신도 잊고 있던 지위와 권한을 다시금 되찾게 된 모습이죠. 누가 그 일을 주도한 겁니까? ‘여호야긴’ 그 이름 뜻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신’ 결과죠. 그만큼 나라 잃고 포로로 끌려간 온 유다 백성들도, 집나간 탕자를 다시금 받아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도, 똑같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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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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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령님께서 무엇을 깨닫게 하십니까? 예레미야가 예레미야로 살 수 있었던 게 뭔가, 하는 점이죠. 아이라고 말할 줄 알지 못한다고 했던 그, 그런데도 왕과 고관대작들과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던 것, 온갖 고초와 멸시를 받으며 매를 맺고 감옥에 감금되면서도 끝까지 공의의 하나님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신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신에게 놓인 길이 골고다 언덕길이요 수치와 조롱의 십자가 길일지라도 예수님처럼 그 죽음의 사지를 당당하게 받아들인 것이었죠. 그리고는 끝내 하나님께서 그의 명예와 영광을 회복시켜주시고 높여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런 하나님을 믿고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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