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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아가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아7:1-13)

by 권또또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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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자, 솔로몬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고 아담과 하와가 처음 만나던 때, 아담이 하와를 보며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 했습니다. 바로 그처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뜻하기도 하죠. 그래서 아가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랑임을 알게 해 줍니다. 마치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교회인 우리 자신들을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것 말입니다.

 

물론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은 아가서를 읽으면서 큰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매우 문란한 성적인 표현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실제로 술람미 여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오늘 본문에 신체 부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가서가 성경의 정경에 들 수 있느냐, 하는 것에서부터, 이 책은 단순한 두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일 뿐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여인의 신체 부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의 인격적인 만남을 강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 사이에 인격적인 만남, 온전한 합일을 이루는 혼인식이 없다면, 결코 그런 신체부위를 자연스럽게 언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고 산다면, 나의 수치스런 부분까지도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런 차원으로 여인의 신체부위에 대한 말씀을 이해해야지, 단순한 성적인 부분으로 이해한다면, 성경의 의도를 잘못 파악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 부르는 그 사랑의 노래에는 깊은 인격과 고풍이 담겨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표현은 외형적인 부분까지 묘사하고 있어도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마음과 내면은 더 깊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사람은 그 외형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오래가고 그 관계가 더 깊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통해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과 얼마나 깊은 인격적 만남을 갖고 있는지 알게 해 줍니다.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여기에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향해 ‘사랑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을 향한 사랑이 의인화된 것입니다. 사랑이 감정이라는 틀에 갇힌 감성적인 작용만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죠.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실제 사랑속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고, 그만큼 진실한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가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장에서부터 지금까지 둘의 혼인관계 속에서 더 깊어지는 사랑의 모습을 추적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둘 사이에 실체가 없는 사랑이라면, 이렇게 깊은 관계까지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둘의 사랑은 실체이며, 만져질 수 있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어떤 공상이나 상상속의 사랑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공상이나 허상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결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십자가에 재물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실제적으로 사랑치 않았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 역시 상상이나 공상이 아닌 실제가 돼야 하는 것이죠. 사랑은 만져지는 실체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실제적인 관계를 통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죠. 마치 둘이 한 몸이 되라는 하나님의 명령처럼 둘은 진정한 부부가 된 것입니다. 혼인식을 통해 몸만 하나가 된 게 아니라 둘의 인격적인 관계의 깊이, 또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그 사랑의 관계를 통해 온전한 한 몸이 된 것이죠. 만약 둘 사이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오히려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상대방에게만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자세가 필요한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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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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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TV 드라마 속에 빠지지 않는 소재가 있습니다. 불륜이 그것이죠. 불륜이 들어 있지 않으면 드라마가 흥행하지 않는다면서,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다면서,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명목으로 불륜 소재를 필히 끼어 넣습니다. 그러나 그 불륜의 소재에는 불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눈물, 고함소리, 깨 부수는 일들, 복수, 그리고 가슴 아픈 현실을 나타내보여주죠. 진실된 사랑이 깨지는 관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랑의 관계가 그런 모습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이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속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자유를 잃는다’하는 뜻이죠. 하지만 겉으로는 자유를 잃는 것 같지만, 사랑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여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죠. 10절에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속했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이, 한 눈 팔 수가 없이, 오직 한 사람, 한 대상자만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자유를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깊은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를테면 결혼적령기에 달한 30대 청년들은 그때까지 온갖 자유를 누리며 살았지만, 그때부터는 누군가 결혼을 하여 구속된 삶을 더 살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없는 가정은 어떻습니까? 아이가 없는 게 자유로움을 줄지 모르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아이에게 속박당하는 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직장인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게 지겹다고, 자유가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출근하지 않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어떻겠습니까? 백수로서 무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겠지만 그런 삶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피폐해지고 말죠. 진정한 행복은 직장에 귀속되어 열심히 일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가정의 부부로 속한 삶도, 부자지간의 삶도, 하나님과 그 자녀의 삶도, 모두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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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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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 나는 내 사랑에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하는데, 여기에서 ‘사모하는구나’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슈카토'는 성경 전체에 총 3번 등장합니다. 본문의 1번을 제외하면 두 번이 다 창세기에 등장하죠. 먼저는 창세기 3장 16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남편을 원한다’할 때가 바로 ‘테슈카토'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사모하지만 남편은 아내를 심리적, 물리적으로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용어이긴 합니다. 다른 하나는 창세기 4장 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를 원하나’ 할 때가 ‘테슈카토'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께 듣는 책망의 말인데, 중요한 것은 창세기의 ‘사모하다’는 테슈카토는 둘 다 죄와 연관된 뜻입니다.

하지만 아가 7장에 담긴 ‘사모하는구나’의 테슈카토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속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와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만큼 죄는 내게 기웃거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죄를 몰아내려고, 이겨내려고 힘쓸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깊이 각인하며 살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곧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한 삶이요, 곧 하나님을 사모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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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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