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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아가

내 사랑하는 자는(아5:1-16)

by 권또또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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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혼인식 이후에 성숙한 사랑의 과정을 그려주는 말씀입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서로간의 사랑의 구애에 관한 말씀이 담겨 있었고, 5장부터 9장 전반부까지는 성숙한 사랑의 과정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죠. 물론 아가서에 담긴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의 관계는 두 남녀간의 사랑을 그린 내용이라기보다는 솔로몬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그 깊은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부에 대한 왕의 마음이 어떤지, 바꿔 말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솔로몬을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이미 앞장에서 잘 표현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의 1절에서도 4개의 완료형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여기에 4개의 완료형 단어란 ‘들어와서’, ‘거두고’, ‘먹고’ 그리고 ‘마셨으니’ 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무엇을 알려주고자 함이겠습니까? 이제 이 여인이 완전히 자신의 사람, 자신의 소유가 되었음을 확신하며 기뻐하는 모습이죠. 바꿔 말해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홍해를 거쳐 수르 협곡을 지나 시내산에 당도하기까지 여러 사랑의 증표를 보여주신 이후에 언약식을 체결하듯이, 또한 솔로몬이 비운의 주인공으로서 어렸을 때 사랑받지 못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디디아’로 사랑해 주셨고, 그런 사랑의 증표로 결국은 그를 30살의 나이에 왕으로 삼아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솔로몬이나 실은 하나님의 언약식을 통해 사랑의 결정체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너희들은 나의 백성 나의 소유다, 솔로몬 너는 내 백성 내 소유다, 하신 것과 똑같은 격입니다. 이전에 1장부터 2장까지 솔로몬 자신을 여성형 명사인 술람미 여인으로 빗대 하나님을 향해 사랑을 표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그런 솔로몬을 향해 사랑으로 응답해주셨는데, 3장에서 드디어 혼인식을 이루고 그 혼인식의 과정을 4장까지 이어오면서, 오늘 읽은 5장에서는 혼인식 이후에 서로 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 곧 성숙한 혼인생활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도 똑같은 형국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사랑의 증표를 많이 남겨주시면서 내게 찾아와 주십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님이 내 안에 자리 잡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뜻을 좇고자 합니다. 바로 그때가 인격적으로 주님을 모시는 때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그 인격적인 고백 속에서 주님은 나를 당신의 소유로 삼아주시는 것이죠. 그 때가 바로 유일회적으로 임하는 성령세례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고백, 그 증표, 그 언약,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 다시 말해 주님과 언약식을 체결하는 혼인식도 중요하지만 실은 혼인식 이후가 더 중요한 것처럼, 성령세례 이후에 성령충만한 삶은 더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인식을 이루는 것으로 그 사랑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 혼인식 이후에 서로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에 진정한 사랑의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오늘 본문을 통해 신부인 술람미 여인, 다시 말해 솔로몬은 왕에 대해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에 대한 자기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이미 혼인식을 치르던 3장에서도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란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사랑하는 자”라고 계속 고백하고 있습니다. 2절에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또 4절과 5절에서도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그리고 6절에서도, 8절에서도, 10절에서도, 16절에서도 계속해서 “내 사랑하는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향한 고백이듯이, 바꿔 말해 솔로몬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고백을 하는 표현이듯이, 우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최근에 더 하게 됩니다. 어떤 것을 들어달라고, 응답해 달라고, 교회 부흥을 이뤄달라고, 성도들의 가정과 자녀들과 일터와 사업장을 위해 기도하지만, 맨 먼저 기도할 때 떠올리는 고백이 그것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하고 말입니다. 그것이 제가 하나님께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에 대해 사랑을 고백하며 확인하던 순간에, 술라미 여인이 망설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망설임은 여인의 사랑에 대한 마음이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이 되는 그 순간의 심리상태를 묘사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표현한 술람미 여인을 향해 왕이 기다리지를 못하는 모습이 보이죠. 6절에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니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그렇게도 그리던 꿈만 같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잠시 당황하던 여인이 어떻게 할지 망설였는데, 그때 왕이 ‘물러갔다’고 그로 인해 ‘내 혼이 나가버렸다’고 왕을 ‘찾아도 못 만났다고’ ‘불러도 응답이 없다’고 후회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는 8절에서 얼마나 애타게 찾고 또 찾아나섰는지, 왕을 향한 애틋한 마음에 병이 났다고 할 정도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그래서 9절에서는 그렇게 술람미 여인이 왕을 찾아나서는 모습, 다시 말해 솔로몬이 하나님을 찾아나서는 그 모습을 보고, 9절에서 친구들까지 화답을 해 주는 모습입니다.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이른바 연극의 무대로 치자면, 주연 남녀 배우가 있고, 그 주위에 조연들 곧 합창단원들이 함께 소리를 외치는 모습입니다. ‘네가 그렇게도 네 왕을 찾아 나서면서 우리에게까지 알리고 있느냐’하는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이제 10절에서 마지막 16절은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그 왕을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입니다. 신부는 꿈만 같던 일이 현실이 되자 잠시 당황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을 후회했지만, 그 사이에 신랑이 떠나는 듯 보였지만, 그러나 신랑을 갈망하는 그 마음에 그 신랑이 반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으니, 어찌 둘이 온전한 사랑을 재확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6장으로 넘어가면 두 사람이 재회하여 다시금 사랑을 확인하는 그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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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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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께서 언약식을 체결한 이후에 그 언약의 말씀을 잘 준행하며 살도록 하신 게 하나님의 뜻이고, 또 솔로몬을 선택하여 사랑해주시고 왕으로 세워주셨다면 그 사랑에 바르게 반응하며 살도록 하시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죠. 바꿔 말해 언약식이나 혼인예식으로 모든 결혼생활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 결혼식 이후에 더 책임과 의무감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게 남녀 간의 결혼생활이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을 인격적으로 나의 주님으로 모신 이후에 그에 걸 맞는 사랑의 반응과 책임을 다하며 사는 게 성령충만함이듯이 말입니다. 오늘도 정말로 주님의 언약백성, 혼인백성으로서 그에 걸 맞는 성령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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