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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아가

솔로몬의 아가라(아1:1-17)

by 권또또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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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는 영어로 ‘Song of Songs' 곧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본래 아가란 말은 노래라는 뜻인데, 히브리어 ‘쉬에르’(שִׁיר)가 ‘노래’ 즉 Song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에 이 ‘노래’ 곧 ‘쉬에르’가 처음 등장하는 게 어디입니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이후에 미리암이 불렀을 때(출15:1)입니다. 그때 미리암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게 된 것, 그 역사를 행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죠. 

그리고 또 하나의 노래는 사사기에서 나오는 여선지자 드보라와 군대장관 바락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게 나옵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떠나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여 바른 길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20년 동안 압제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학대가 너무 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통회자복하여 울부짖었고, 그 때 하나님께서 여선지자 드보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 하셨고, 그 휘하의 군대장관 바락으로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빈의 철병거 900대와 맞서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대승을 거두게 하셨는데, 바로 그와 같은 역사적인 승리를 맛본 드보라와 군대장관 바락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한 게 사사기 5장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리고 또 그 노래는 성전의 레위인들, 곧 찬양을 담당하는 레위인들이 부른 노래에도 등장합니다. 그렇듯 미리암이 부른 노래, 드보라와 바락이 부른 노래, 그리고 성전의 제사장들이 부른 노래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이나 업적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찬양도 바로 그와 같은 중심이 있어야 함을 알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의 아가에 나오는 노래, 곧 아가서의 노래는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그 근본 바탕에 깔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대부분 솔로몬의 아가서는 솔로몬이 신혼 때 지은 지혜서로, 잠언은 솔로몬이 인생 중반에 쓴 지혜서로, 그리고 전도서는 솔로몬의 인생 후반부에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면서 지은 지혜서로 알려져 있는데, 이 솔로몬의 아가는 신혼 부부, 곧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의 신혼 때 부른 인간 대 인간의 노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쉬에르’ 곧 Song이란 의미는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듯이, 아가서는 곧 주님과 우리 인간, 다시 말해 신랑되시는 주님을 신부인 우리 인간들이 찬양하는 노래임을 알게 해 준다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이 아가서는 하나님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또 육체적인 언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서, 이 아가서가 과연 성경의 정경에 해당되는 책이겠는가, 하는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이 아가서를 ‘메길롯’(Megilloth) 중의 하나로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중 성문서집에 속하는 두루마리로 된 다섯 권의 책을 ‘메길롯’이라고 하는데, 그 다섯권이란 아가서, 룻기서, 예레미야 애가서, 전도서, 그리고 에스더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아가서를 읽어나가고, 오순절에는 룻기서를, 장막절에는 전도서를, 부림절에는 에스더서를, 그리고 성전파괴의 날(아브월 제9일)에는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어나간다고 하죠. 바꿔 말하면 이 아가서는 유대인들에게 책 중의 책이자, 노래 중의 노래라는 사실, 이 아가서는 정경에서 제외할 책이 아니라 오히려 정경 중의 정경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 솔로몬이 이 아가서는 썼겠습니까? 잠언과 전도서를 살펴 볼 때 이미 생각해 봤지만, 솔로몬은 B.C.971년 곧 그의 나이 30살에 왕위에 올라 40년 곧 B.C.931년까지 통치한 인물이죠. 그렇다면 그가 술람미 여인을 만날 때는 많은 처첩을 거느리기 전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를테면 열왕기상 11장 3절에 “솔로몬은 후궁이 700명이요 첩이 300명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그런 일부다처를 이루기 전에 술람미 여인을 만났지 않냐, 그렇다면 솔로몬은 이 아가서를 왕이 되기 전에 곧 그의 젊음의 때에 이 아가서를 쓰지 않았나 하고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습니다. 과연 솔로몬이 그 젊음의 때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이 시를 썼다는, 그 ‘술람미 여인’(아6:13)이 누구냐 하는 점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아가서 4장 8절의 말씀 곧 을 들어서 술람미 여인은 ‘바로의 딸’일 것으로 추정을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술람미’(שׁוּלַמִּית)라는 이름은 단지 ‘솔로몬’의 여성형 이름일 것으로 추정을 하기도 합니다. 술람미라는 단어의 어근을 살펴보니까 솔로몬과 같은 어근인 ‘샬람’(שָׁלַם) 곧 ‘평화’를 뜻하는 ‘샬롬’으로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그것입니다. 이 아가서를 보통 솔로몬이 여러 노래들을 편집해서 쓴 노래라고도 하는데, 솔로몬이 쓴 것이 확실한데, 하지만 술람미라는 여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고 해서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해 노래하는 게 아니라, 실은 솔로몬 자신이 젊은 시절, 곧 왕이 되기 전, 왕이 될 수조차 없었던 자신을 왕으로 삼아주시는 그 과정 중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긍휼히 여기시는 그 사랑에 대한 속삭임을 가슴 깊이 올려드리는 진정한 의미의 ‘노래 중의 노래’가 아니겠나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가서는 여러 ‘비유’가 등장하기도 하고, 또 2절 앞부분에 ‘여인’하는 말과 4절 중반부에 ‘친구들’ 그리고 9절 앞부분에 ‘남자’라는 단어가 기록돼 있는데, 그렇게 ‘여인’과 ‘남자’와 ‘친구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이것이 ‘연극’의 요소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대화를 둘러싼 그 친구들이 서로서로 호응해 주는 것 같은 문학양식을 담고 있어도, 이 아가서는 ‘인간과 신의 대화양식’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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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아가서를 기록한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솔로몬이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자기 자신, 배다른 공식적인 19명의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10번째 아들에 해당한 솔로몬은 정말로 왕이 될 자격이 없고, 심지어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자격조차 없었는데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아’(삼하 12:25)로 하나님께서 친히 지어주시기까지 하셨죠.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솔로몬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깊이 새기는 차원에서 이 아가서를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작고 연약하고 볼품없는 이스라엘 민족(신7:7)을 특별히 선택하시고 사랑해 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서로 교회를 이루어 주님의 신부로 단장하며 살 수 있도록 하신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더욱이 이 아가서가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 젊음의 시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한 것이기에,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들도 똑같은 차원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 첫사랑, 순전한 사랑을 잃지 말라는 차원 말입니다. 그를 위해 이 아가서를 솔로몬으로 하여금 쓰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장에서 8장까지 기록돼 있는 이 아가서는 제목을 칭하는 1장1절을 비롯해 1-2장까지는 ‘사랑의 구애’, 3-4장까지는 가마를 타고 혼인식을 거행하는 모습, 5장-8장7절까지는 혼인 후 성숙한 두 사람의 인격적인 관계를, 그리고 8장8-14절까지는 에필로그, 곧 후기에 관한 내용으로 엮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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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읽은 1장은 전체적으로 ‘왕과 여인의 사랑 시작’ 부분이라는 사실, 달리 말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사랑에 대한 시작부분, 더 구체적으로 말해 곧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우리 자신과의 사랑에 대한 시작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에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주님이 나를 입맞출 정도로, 너는 내 것이라고 할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4절이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할 정도로 그 분의 침실로, 곧 지성소로 나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7절에서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주님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16-17절을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궈나.”하고 고백할 정도로 그 당시 하나님의 집, 곧 성전에서 하나님과 깊은 사귐의 시간을 갖자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런 ‘여디디아’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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