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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하나님께서는 죄에 찌든 인간들을 쓸어 버리기 위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 계획을 알려주시고 방주를 짓도록 하셨죠.
그 방주는 오늘날의 축구 경기장보다 더 길었습니다.
그 거대한 방주를 짓도록 하실 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그 어떤 것도 제공해주지 않고 묵묵히 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을 걸고 방주를 지어나갔죠.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 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8-39)
노아는 홍수의 심판에 대비해 방주를 짓고 자기 생을 걸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홍수가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홍수심판을 믿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도 임하는 것이냐먼서 허구한 날 방주를 짓는 노아를 미친 사람취급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그들의 조롱과 비난에도 개의치 않고 묵묵히 방주를 완성했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족과 함께 방주에 들어갔죠.
그렇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을 방주에 들어가게 하셨다면 곧장 홍수가 쏟아지고 세상 사람들을 쓸어버림이 마땅치 않겠습니까?
하지만 노아가 방주에 들어갔는데 홍수는 곧장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이틀이 돼도 사흘이 돼도 마른 하늘에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7장 10절을 보면 홍수는 노아가 방주로 들어간 지 7일이 지나서야 시작됐습니다.
그 동안 세상 사람들은 더욱더 길길이 날뛰며 방주 안에 들어간 노아와 가족들을 보고 온갖 야유를 퍼붓지 않았겠습니까?
도대체 홍수가 언제 쏟아진다는 것인지, 당장 방주 안에서 나와 우리들처럼 이 땅의 삶을 즐기라고 소리쳐댔겠죠.
그때 노아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자신도 헛소리를 들은 건 아닌지, 뭔가 홀린 것은 아닌지, 번민에 사로잡힐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로부터 7일째 되던 날부터 하늘의 창을 여신 하나님께서 장대비를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깨달음)왜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방주에 들어가게 하신 그날부터 홍수를 쏟아부은 게 아닙니까?
노아로 하여금 방주 속에서 왜 7일이나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까?
만약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자마자 하늘이 열리며 홍수 심판이 시작됐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노아에게 그것을 당연시 하면서 자신이 방주를 지었기에 구원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공로로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만큼 자기 교만에 빠지기 쉬운 노아로 하여금 자기 교만 자기 공로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홍수심판을 방주 안에서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홍수 심판의 때는 방주에 들어간 노아가 결정한 게 아니라 오직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죠.
(적용)그러니 7일이 지나 드디어 홍수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 노아는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는데 드디어 홍수를 쏟아부어주시네요.’
‘저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저를 조롱하고 비웃고 비난했는지 몰라요.’
‘나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묵묵히 이 방주 안에서 기다렸어요.’
‘홍수 심판을 말씀하셨지만 그 심판의 때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이제사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 방주 안에서 언제 나갈 것인지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겠군요. 그또한 믿음으로 순종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뒤에도 7일 동안 홍수가 시작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노아로 하여금 자고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따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노아의 방주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의 인생 방향과 목적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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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보내고 새해를 맞은 바울은 봄이 되어 최종 목적지인 로마로 향했습니다.
그때 처음 타고 왔던 알렉산드리아 배는 좌초되고 파선했고 같은 선단에 소속된 다른 알렉산드리아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배의 머리에는 제우스 신의 쌍둥이 아들의 형상을 한 ‘디오스구로’가 장식이 돼 있었죠.
물론 그 배의 선주와 선장 그리고 선원들은 뱃머리 장식인 디오스구로가 신의 형상이라고 믿었고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조각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겼고, 그 속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지 않았죠.
만약 그것이 신의 형상이거나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 뱃머리 형상을 부숴버리도록 했거나 아예 타지 않았겠죠.
(깨달음)그것은 이 땅에 존재하는 나무나 금속으로 된 신의 형상물도 그렇고 신주단지나 부적도 마찬가지라고 했죠.
절간의 불상이나 신주단지나 부적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조형물이나 종이짝에 불과할 뿐 신의 형상도 아니요 신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 아무리 빌고 빌어도 듣지도 못하고 냄새도 못 맡는 그것들이 어찌 신처럼 역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인간의 욕망으로 빚어낸 조각품일 뿐 그것들이 역사하거나 신통한 기적을 일으키는 게 절대 아니라고 했죠.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뿐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인간의 욕망으로 빚어낸 신이 아니라 자존자 곧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 앞에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며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친히 들으시고 역사하는 분이라고 했죠.
바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디오스구로가 아무리 거대하고 웅장해도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조각상에 지나지 않다고 여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배에 몸을 맡긴 채 로마로 향한 것이었죠.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세계를 주관하신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어디에 있든지 늘 동행하시는 주님이신 줄 믿은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을 갖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죠.
(본문)오늘 본문 12-14절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원해)바울 일행을 태우고 멜리데 섬을 떠난 또다른 알렉산드리아 배는 북쪽에 위치한 지중해 최대 섬인 시칠리아의 수라구사에 도착했습니다.
그 항구에서 3일간 정박을 했습니다.
3일 뒤 수라구사 항구를 출항한 알렉산드리아 배는 시칠리아 해안을 따라 이탈리아 반도의 레기온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또 하루를 정박했습니다.
그 하루가 지나 남풍이 불 때 알렉산드리아 배는 시칠리아섬과 이탈리아반도 사이의 메시나 해협을 통과해 이튿날 로마의 외항 보디올에 당도했죠.
그곳 보디올에서 로마까지는 220km를 앞두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로마 이탈리아 반도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곳 보디올에서 곧장 로마로 향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요청으로 그곳에서 7일을 머문 후에야 로마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렇게 곳곳에 머물다가 로마로 향한 것입니까?
자신의 최종 목적지가 로마의 황제의 법정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한시바삐 로마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시칠리아 섬의 수라구사에 3일간 정박했고 이탈리아 레기온에 정박해 하루를 보냈고 또 로마의 외항 보디올에 당도해서는 7일씩이나 머물렀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자기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주도하고 계획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성화)베스도가 유대 지방의 신임총독으로 부임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고발당한 바울은 2년째 가이사랴 감옥에 구금당했습니다.
신임 총독 베스도는 바울의 재판과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바울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바울이 로마 황제의 법정에 상소했기 때문에 백부장 율리오를 시켜서 로마로 호송토록 명령했습니다.
그때 백부장 율리오는 휘하의 군사들과 함께 바울을 로마로 호송코자 가이사랴에서 아드라뭇데노 배를 탔습니다(행27:1-2).
그때까지만 해도 베스도 총독은 지중해 항해 금지 시기 전에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지중해 항해 금지 시기와 마물린 그 시점에 출발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스도 총독과 백부장 율리오의 판단은 처음부터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가이사랴를 출발한 아드라뭇데노 배는 얼마 가지 않아 맞바람 때문에 남쪽 구브로 섬으로 밀려나야 했습니다.
그 해안선을 따라 겨우 목적지인 루기아의 무라시에 당도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갈아탔는데 그때도 심한 역풍으로 이틀이나 걸려 니도 앞바다까지 당도했고, 천신만고 끝에 미항에 간신히 닻을 내렸죠.
예기치 못한 역풍에 떠밀려 그렇게 많은 날들을 허비했고 급기야 지중해 항해 금지 시기가 코앞에 닥쳐왔습니다.
그때 바울은 더이상 항해하는 것은 위험하니 겨울을 나고 봄에 출항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율리오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곧장 출항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맞이하고 말았죠.
그로 인해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있던 276명의 사람들은 14일간 초죽음이 된 상태 속에서 지내야 했고, 그 배가 좌초되고 파선당할 즈음에 멜리데섬에 당도해서 3개월간 겨울을 지내야 했죠.
그러니 지중해 항해 금지 시기가 오기 전에 로마에 당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 베스도 총독과 율리오 백부장의 계획이 얼마나 헛수고였는지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입장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사실 바울도 하루라도 더 빨리 로마에 당도해서 황제의 법정에서 복음을 변호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멜리데 섬에서 출발한 알렉산드리아 배가 수라구사에 도착해 3일이나 정박해 있었다면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 목적지인 레기온에서도 남풍이 불때까지 속수무책 기다려야 했고, 로마의 외항 보디올에서는 로마까지 220km라면 7일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곳 보디올에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7일동안이나 지내야 했습니다.
바울이 3차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들린 적이 있는데 그때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서를 써보냈는데 그 편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룻밤이라도 묵고 가기를 요청하며 7일간 지낸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바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아무리 로마 황제 앞에 빨리 서고 싶어도 자기 인생의 시기를 자기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오직 위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울의 인생 방향과 그 시기를 정하면서 주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방주를 지은 노아에게 방주를 들어가게 하셨어도 곧장 홍수가 쏟아지게 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죠.
그로부터 7일이나 기다리도록 했던 것도 노아 스스로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렇게 말씀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
이땅의 모든 때와 시기를 결정하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바울의 목적지인 로마를 늦추시는 뜻도 거기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아무런 멈춤도 없이 로마에 곧장 당도했다면 그야말로 기고만장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선교사역에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시간표를 늦춘 것이었습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 방향과 목적지도 주님의 섭리 속에서 순항토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노아에게 방주를 다 지은 다음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께서 곧장 홍수를 쏟아붓지 않고 7일간 기다리게 하지 않았더냐?”
“만약 방주에 들어간 그날 즉시 홍수가 쏟아지게 하셨다면 노아는 그만큼 자고하고 교만치 않았겠느냐?”
“멜리데 섬에서 또다른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한 바울도 곧장 로마에 당도한 게 아니라 수일이 걸리지 않았더냐?”
“만약 바울이 수라구사에 도착해 3일을 정박하고 레기온에서 하루를 기다리고 로마의 외항 보디올에서 7일간 성도들과 지내지 않고 곧장 로마의 황제 앞에 당도했다면 너무나도 기고만장하지 않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천하 범사에 때와 기한을 정하셔서 당신의 자녀들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께서 너에게 말씀하신 약속이 있을지라도 지금 당장 성취하지 않고 기다리게 한다면 주님의 숨은 뜻이 있지 않겠느냐?”
“애굽에서 건져낸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 40년 없이 곧장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그들도 기고만장했을테니 말이다.”
“지금 바울도 11일나 걸려 로마의 외항 보디돌에 발이 묵힌 상태로 지내게 하신 뜻도 바로 그와 같지 않겠느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하신 말씀을 네가 마음에 새기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쉬지 않고 지켜보신단다
그의 생각 셀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심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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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죽임 당하는 고난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턱이 없죠.
하지만 절대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게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내가 의인이요 내 구원을 완성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는 게 그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의 은혜를 덧입었어도 육체를 입고 사는 한 우리는 죄성과 죄의 부패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입니다.
그만큼 한순간이라도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 안의 죄성과 죄의 부패성에 사로잡혀 죄늬 노예로 전락하는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노아도 그토록 순종해서 방주를 짓고 방주 안에서 7일을 기다려 홍수가 쏟아졌고 1년 17일간의 기다림 속에서 방주가 아라랏 산에 당도해 나왔지만, 농사를 짓고 포도주에 취해 연약함을 노출했던 것과 똑같은 격이죠.
그러니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때와 시기에 따라 선한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어도 죄성과 죄의 부패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바라기처럼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과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추진한 계획이 막판에 어긋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곧 끝날 것 같던 일도 기약없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죠.
내 삶에 예기치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도 불평하거나 원망하기보다 도리어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 더욱 풍성케 하시는 게 목적이기에 가장 선한 때에 가장 선한 길로 자고하지 않고 겸손하게 인도하시고자 말입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요. 주님. 아무리 주님의 뜻을 따르는 바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다스리심 속에 있는 걸 깨닫도록 하고자 로마로 향하는 길목을 늦추시고 다듬어주셨네요.”
“노아가 자고하지 않고 교만치 않고 겸손할 수 있도록 방주 안에 들어간지 7일째 되던 날에 홍수를 쏟아부어주셨네요.”
“주님. 주님의 말씀을 좇아 계획한 일이 설령 뒤틀리고 늦춰지더라도 더욱 겸손히 주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며 살게 해 주세요.”
“아무리 제가 완벽하게 하나님의 일을 성취했어도 제 안에 죄성과 부패성이 있음을 늘 놓치지 않고 더욱더 겸손하게 주님을 바라보며 살게 해주세요.”
(찬양)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쉬지 않고 지켜보신단다
그의 생각 셀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심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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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 더욱 풍성케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당신의 자녀들이 자고하지 않고 교만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삼고자 때로는 그 길을 늦추시고 연장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지 7일째 홍수를 쏟아부으신 일도, 바울이 로마의 외항 보딜올에서 7일을 더 머물게 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죠.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행해왔고 이제 성취할 일만 남았어도 그 시기를 늦추시는 것도 그런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받았어도 완벽한 의인이 아니라 죄성과 부패성이 남아 있기에 더욱 겸손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당신이 주관하신 때에 우리를 선한 통로로 삼으시사 하나님나라의 영광스런 도구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다짐의 기도를 주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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