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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책리뷰ChristianBookReview/예화166

“새벽 4시에 일어나 종을 칠 수 있겠냐?” 송용필 목사의 '갚을 길 없는 은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칼 루이스’가 금메달을 땄죠. 그때 그 금메달리스트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간증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통역을 맡은 분이 송용필 목사님이란 분입니다. 그분은 그 전에 워런 W. 워스비 목사님과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설교를 통역하기도 했었죠. 1985년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식 행사에서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의 설교를 통역한 분입니다. 본래 그는 함경남도 장진군 상남면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한 아이였죠. 그때 당시 충청남도 공주 땅에 정착을 했는데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공부는 곧잘 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알아주는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도 다닐 수가 없었죠. 그는 꿈을 이루고자 집을 뛰쳐나와 무작.. 2021. 10. 21.
"선교사님 시편 91편 시편 91편이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레이(Gray) 선교사 가족이 있습니다. 1993년도에 우크라이나에 선교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타지역에서 20년 선교하다가 우크라나이의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 미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집을 구하도록 도와줬습니다. 그리고는 그 미국 선교사님이 그레이 선교사님에게 그런 말을 하고 떠났습니다. “선교사님, 시편 91편, 시편 91편이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그때 그레이 선교사님은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주택을 구하는 것과 시편 91편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님이 호텔에 들어가 차를 세우고, 환전하려고 혼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차 속에 있던 딸이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 바깥을 봐요.” 엄마가 바깥을 .. 2021. 10. 12.
“네 인생도 죽 쑤고 있는데, 무슨 죽이냐?” 최복이 집사는 충남 청양군 칠갑산 아래 최씨 집성촌에서 태어났습니다. 본처와 후처 사이에 태어난 13남매의 자녀들 틈바구니 속에서 자란 그녀였습니다. 그 집에는 사당이 있었고 선산에는 사찰이 있었고, 고모들 중에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를 쓰거나 이야기 작가가 되는 꿈을 안고 그녀는 대학의 국문과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1년 선배를 만나 연애했고, 4학년 때 6개월간의 방위생활을 한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24살의 신랑과 23살 신부가 그때 신접살림을 차린 것이었습니다. 결혼 후 ‘대학출판사’라는 남편의 첫 사업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다이아몬드수입, 인삼제품제조판매, 목욕용품판매등 모든 사업들이 줄줄이 망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돌 지난 아이를 업고 부천에서 보증금 100에 월세5만원의.. 2021. 10. 12.
김제 금산의 ㄱ자교회 김제에 금산교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가 유명한 것은 옛 예배당 건물이 ‘ㄱ자교회’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1907년 그때 우리성결교회가 태동된 시기인데 그당시 금산교회는 장로선출을 하던 때였죠. 그때 금산교회는 두 명의 장로 후보 중에 한 명을 뽑아야 했습니다. 이른바 조덕삼 장로 후보와 이자익 장로 후보였습니다. 장로 후보라고 부르기 때문에 둘 다 그 당시 돈 많은 지주 출신인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죠. 그 지역에 돈 많은 지주는 조덕삼 장로 후보였습니다. 그에 비해 이자익 장로 후보는 조덕삼 장로 후보의 머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둘 다 장로 후보에 이름을 올렸겠습니까?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 장로란 그 당시의 목사님들처럼 모든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며 살던 분들 아니었습니까?.. 2021. 10. 12.
“톨레레게 톨레레게”(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본래 아프리카 시골 출신인 어거스틴은 어렸을 적 어머니 모니카를 따라 거룩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0대 중반에 어머니는 아들을 카르타고 대학에 입학시켰고, 그곳까지 와서 영적으로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신앙과는 거리가 멀게 되었고, 이내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숨막히는 경건생활을 강제하는 풍토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로부터 13년 간 그는 어느 여인과 동거하면서 사생아까지 낳는 그야말로 탕자로 살았습니다. 더욱이 페르시아의 영지주의 교리를 가르치는 마니교라는 이상한 교리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모니카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야말로 찢어지지 않았겠습니까? 그가 30살이 되었을 때 그 어머니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어렵게.. 2021. 10. 12.
“만약 저 교수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독일 히틀러의 잔혹한 독재정치에 항거한 사람이 있습니다. 1945년 4월 히틀러 암살 작전에 가담한 죄목으로 39살 나이에 교수대에서 죽은 본 회퍼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본 회퍼가 히틀러 체제에 동조하지 않고 참된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고백교회의 토대를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은 히틀러에 항거한 죄로 1937년부터 7년간 다차우 감옥의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가 갇혀 있는 방에는 조그마한 창문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유일하게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바깥의 풍경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죄인의 목을 매는 밧줄과 교수대가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슨 .. 2021.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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