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왕국 유다의 여덟 번째 왕은 요아스였죠. 그는 7살에 왕이 되어 할아버지인 여호람 때부터 뿌리내리게 한 바알 신앙을 척결했고, 성전을 수리했고,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일으켜 하나님과의 언약백성을 다시금 강화시켰죠. 그러나 임기 말년에 아람 왕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금은보화를 그들을 달래다가, 결국 그의 신복의 칼에 맞아 비명횡사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그 아들 아마샤는 9대 왕이 되었는데, 그는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아버지의 정적들만 제거할 뿐 3족까지는 멸하지 않았죠. 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에돔 국가를 정벌한 이후 말년에 자기 자만에 빠져 북이스라엘까지 치고자 했지만 완전히 대패했고, 왕궁의 곳간과 성전 곳간의 금붙이들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그의 최후는 아버지처럼 신복의 칼날에 비명횡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은 10번째 왕은 ‘아사랴’ 곧 ‘웃시아’ 왕이었죠. 웃시아 왕은 하나님을 향한 정직한 길을 걸었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은 근절시키지 못했죠. 52년간 문둥병에 걸려 별실에 머무르며, 그 아들 요담으로 대리청정케 했습니다. 그 웃시아가 죽고 그 아들 요담이 11번째 왕위에 올랐죠. 요담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길을 좇았지만 백성들이 섬기는 산당만큼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왕위에 있을 때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의 18대 왕 베가가 쳐들어왔는데, 그 위태한 상황 속에서 그는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런 흐름 속에 있는 남왕국 유다와 달리 북 왕국 이스라엘은 어떤 왕위가 계속됩니까? 북왕국 이스라엘의 10번째 왕 예후는 아합이 퍼트린 바알신앙을 허물어트리고 그 신전도 허물어트리고 칙간을 세울 정도로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했죠. 그래서 그의 아들 4대에 걸쳐 왕위를 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래서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그 아들 요아스, 그 아들 여로보암2세가 계속해서 통치했는데, 여로보암 2세 때에 들어서서 북이스라엘은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로보암 2세의 뒤를 스가랴가 이어받았는데, 그 스가라갸 여로보암의 길을 좇아 악행을 행할 때 살룸이라는 부하 장수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가로채고 말죠. 물론 그 살룸은 한 달만에 왕권이 끝나버리는데, 그 밑의 부하장수였던 므나헴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므나헴 때, 다시 말해 북왕국 이스라엘의 16대왕 므나헴의 시대에 신흥강대국인 앗수르 제국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므나헴은 아이 밴 부녀자들의 배까지 가르며 왕권을 지키고자 했고,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자들의 재산까지 강제로 빼앗아 앗수르 왕에게 갖다 바쳤지만, 그의 왕위는 10년 만에 막을 내리고, 그 아들 브가히야가 17대 왕으로 등극하게 되죠. 그러나 그 브가히야 역시 여로보암의 길을 좇아 악행을 저지를 때 그의 통치는 2년 만에 종국을 고하죠. 그의 부하 장수 ‘베가’가 쿠데타를 일으켜 18대 왕으로 올라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베가가 18대 왕이 되어 20년을 통치하는데, 신흥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디글랏 빌레셀 왕이 북쪽 다메섹과 수도 사마리아의 성읍까지 점령하여 온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갔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런 위기 상황속에서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해 베가 왕을 죽이고 제 19대 왕위에 오른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 19대 왕 호세아의 시대에 완전히 끝나버리죠.
이처럼 남왕국 유다도,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도 점점 역사의 한계점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 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의 12번째 왕, 다시 말해 10번째 웃시아 왕에서 11번째 요담으로, 그리고 12번째 왕 아하스 시대 속에서 맞이한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크게 2개의 단락으로 나누는데, 1-5절까지가 ‘유다 왕 아하스의 전반적인 생애에 관한 부분’, 6-20절까지가 ‘아하스 왕의 악행이 어디까지 확산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과 그의 최후’입니다. 본문 2절에는 아하스가 20세에 남왕국 유다의 12대 왕으로 등극하고, 그로부터 16년간 다스렸음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본문 2절 중반에 “그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라고 증언하죠.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에 관한 하나님의 평가 기준이 ‘여로보암 왕’이었다면, 남왕국 유다의 왕들은 언제나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다윗의 인생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왕’(삼상13:14)이었죠. 그런 다윗과는 대조적으로 본문의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 왕’이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가 얼마나 패역했을까요? 본문 3-4절에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아하스 왕의 죄악에 대해 한자성어로 말한다면 ‘가면 갈수록 상황이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점입가경(漸入佳境)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대에 주신 하나님의 풍요와 번영은 일찌감치 잊어버렸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행한 모습을 답습해 백성들이 산당에서 분향하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이교 풍습까지 행한 왕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그의 악행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행한 죄의 씨앗들, 다시 말해 백성이 산당에서 제사하도록 하는 그 산당을 허용한 데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죄의 씨앗들을 방치하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의 생활까지 잠식해버립니다.
그토록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던 아하스 왕에게 이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본문 5절처럼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갑작스레 침공을 하죠. 적들의 급습에 허를 찔린 상황입니다. 그런데 5절 하반절은 그에 대한 상황을 단 한 줄로 기록합니다.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적들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지만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하스 왕이 저지른 악행을 보면 분명히 전쟁 통에 죽거나, 적들에게 둘러 싸여 고전하다가 볼모로 잡혀가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이 아하스 왕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죠.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그토록 패역한 아하스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중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애로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그런 하나님의 긍휼을 뒤로 한 체 더 어그러진 방향으로 나가죠. 본문 7절에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 왕은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쳐들어왔을 때, 그들을 붙잡으면서 막아주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 채,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손을 붙잡고자 나아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은금들을 내다가 예물로 보냅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모습이 나오죠.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을 만나러 갔다가 보게 된 우상숭배의 제단을 보고서는 욕심이 생겼고, 그래서 직접 그 제단의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 남왕국 유다 땅에 그걸 만들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후에는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의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가져다가 새로 만든 우상의 제단 북쪽에 두는 어처구니없는 죄까지 더하죠.
죄는 그처럼 전염성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확산성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죄의 뿌리를 차단하지 못한 결과가 그렇게 확산성을 가져온 꼴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하스 왕은 화려했던 다른 왕들과는 달리 평범한 인생으로 마감했음을 본문 19-20절이 증언하죠.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은 그것입니다. 연약한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중징계로 처리하는 분이 아니시라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기다려주시는 분입니다. 그만큼 진실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모든 불의함을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그렇기에 그런 죄의 유혹과 전염성에 빠져들기 전에, 죄의 확산성을 가져오기 전에, 미리 하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품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연약한 저희들은 죄의 유혹과 전염성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도 중징계로 처리하지 않고 긍휼로 기다려주시는 주님.
그런 아버지 앞에 더 빨리 나아가 하나님 앞에 모든 것들을 털어놓고 회복케 하시는 은혜를 덧입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힘껏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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