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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오바댜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악(옵1:1-21)

by 권또또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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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댜서는 구약성경 39권 중에 분량이 가장 적은 책으로 한 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오바댜란 이름은 ‘아바다’와 ‘야’가 합쳐진 말로서 ‘여호와의 예배자’ ‘여호와의 종’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오바댜란 이름이 본래의 이름보다는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상징적으로 붙인 이름이지 않냐 하고 생각을 하죠. 또 케일(Keil)이란 성경학자는 오바댜가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와 마주친 인물이지 않냐 하고 생각을 합니다. 열왕기상 18장 3절 이하에 나오는 ‘오바댜’를 말하는 것이죠. 그 당시 오바댜는 왕궁에서 일하는 자였는데, 그럼에도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하고 성경은 평가하죠. 더욱이 그 당시에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려고 할 때 그들 중 100명을 데리고 가서 오십 명씩 굴에 숨겨주고 먹을 떡과 마실 물을 공급해 줬던 사람이 오바댜입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잘 섬겼던 사람인데, 그런 그가 오늘 본문의 오바댜서를 기록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겠죠.

오바댜 역시 이전에 살펴봤던 아모스나 호세아처럼 가문이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명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와서 그것을 전한 것입니다.

이 오바댜서를 기록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본문 1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과 12절의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이란 표현을 볼 때 아마도 남유다의 멸망 후 즉 B.C.586년 이후에 기록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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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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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댜서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인가?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 곧 에서의 후예요 이스라엘의 형제국인 에돔의 죄와 멸망, 또 만국의 심판,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바른 수직관계를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형제와 형제 곧 이웃과 바른 수평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토록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의 교만을 꾸짖으셨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해 남동쪽에 거주했습니다. 그곳은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죠. 에돔 사람들은 그곳의 자연 동굴이나 바위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지형적으로 외부 침입자가 들어올 수 없는 곳에 수도 ‘셀라’를 세웠는데, 그 뜻도 ‘바위’입니다. 열왕기하 14장 7절을 보면, 남 유다 아마샤 왕이 에돔 사람들을 죽인 사건이 나오는데 이 때 수도 ‘셀라’를 쳐서 취하고 그 지명을 ‘욕드엘’로 변경하죠.. 아마샤 왕이 셀라를 정복하긴 했지만 에돔의 천연요새는 함락하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었죠. 그리고 그곳은 남쪽의 애굽, 아라비아와 북쪽의 메소포타미아, 수리아간의 교역에 중요한 교통요지였으며 철광석과 구리 등의 자원이 풍부했습니다.

그런 지형적인 요건으로 인해 세계 어느 나라도 에돔을 접근하거나 물리칠 수 없었고, 대신에 엄청난 철광석과 구리 덕택에 풍요를 누린 나라가 에돔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으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인양 강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가장 큰 교만입니다. 그런 교만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않게 되죠. 인간이 교만하게 되면 자신의 실체를 모르게 되고, 자신의 연약함도 전혀 생각지 않게 되죠. 그래서 본문 3절에 하나님께서 에돔을 꾸짖으십니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였던 에돔은 어느 나라도 자신들을 정복할 수 없다는 자신감에 넘쳐 인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교만한 에돔에게 하나님께서는 4절을 통해 거기서 내가 너를 끌어내리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교만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죠. 그런데 그런 교만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분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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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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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교만했던 에돔은 5-6절의 말씀처럼 부와 권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을 말씀하시죠. 그래서 에돔은 역사적으로 B.C.322년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함락당해 수만 명이 노예로 팔려가게 되고, 수 천 명의 지도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죠. 그리고 A.D.70년경 제1차 유다-로마전쟁이 일어날 당시, 다시 말해 유다의 독립전쟁이 일어난 이후에는 에돔이란 나라가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 교만하다가 그렇게 끝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과 온전한 수직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에돔을 통해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오바댜서를 통해 두 번째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인 관계입니다. 본문 6절에 에돔을 ‘에서’라고 언급하지 않습니까? 창세기 36장 1절에 에돔은 본래 에서의 후예들로 나오죠. 다시 말해 에돔은 본래 야곱의 형 에서의 자손들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후손은 훗날 이스라엘 나라가 된 것이고, 에서의 후예는 훗날 에돔이란 나라가 된 것이죠. 중요한 것은 비록 야곱의 후예인 이스라엘이 패망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훗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영원히 존속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이스라엘 변방에 존재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둘의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입니까? 에서가 동생에게 장자권을 팔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그렇게 결정된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장자권을 팔아넘겼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다, 하고 해석을 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기에 에돔에게 어떤 잘못을 따져 물을 수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10절을 통해 그 답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에돔이 멸절 당하게 된 원인은 에서가 장자권을 판 것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않았기 때문도 아닌비다. 그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형제에게 행한 포학’ 때문이었습니다. 포학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마쓰’는 ‘학대하다’, ‘폭행을 가하다’, ‘난폭하다’는 의미입니다. 에돔의 멸망은 결국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에게 폭행을 가하고 형제를 학대한 죄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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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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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매우 어려웠던 적이 있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불신했던 사건으로 인해 그들이 광야에서 40년 살지 않았습니까?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지나 요단강 동편으로 이동하려고 했죠. 하지만 그때 에돔 사람들은 그토록 힘들어하던 형제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길을 허락지 않고 막아섰죠. 그것이 민수기 20장 14-21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때 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신까지 보내서 정중히 요청을 했죠. ‘조용히 아무 폐를 끼치는 일이 없을 테니 지나가게만 해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에돔 왕은 단호히 거절하고, 심지어 살해위협까지 가했죠.

바로 그 시절의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도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곧 형제 사랑입니다. 그때 율법교사가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하고 두 번째 질문을 던졌는데, 예수님은 강도만난 자를 돌봐 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삶을 살도록 하라고 했죠. 그처럼 에돔 사람들은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살해위협까지 가한 그 죄악을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묻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지구상에서 그들이 사라지게 된 이유라는 것이죠.

오늘도 오바댜서를 통해 말씀하듯이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를 통해 힘써 여호와를 알고, 내 형제와 이웃과 수평적인 관계도 잘 맺고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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