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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요나

하물며 어찌 내가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4:1-11)

by 권또또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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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는 모두 4장으로 돼 있습니다. 1장에서는 하나님의 소명을 저버리고 도망가는 요나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징계를 보여주었고, 2장은 불순종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지내면서 간절하게 회개 기도를 드리는데,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요나를 다시금 살려 주시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3장에서는 요나가 다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데,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은 내용이 나와 있었죠. 만일 요나서를 기록한 목적이 니느웨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에 있었다면, 요나서는 3장으로 끝나는 게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서의 끝은 4장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4장의 내용이 어떻습니까? 뭔가 엉뚱한 내용이 나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 받은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오히려 불평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이 그것이죠.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하는 모습 말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 곧 앗수르 제국에 대해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것을 보고서 매우 불평하고 항의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요나를 향해 하나님께서 박넝쿨의 교훈을 통해, 요나의 어리석음 다시 말해 자기 신앙기준만 원하는 신앙인의 연약함을 깨우쳐 주는 것이, 4장까지 기록한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 백성들이 왕과 고관대작들과 온 백성들, 심지어 짐승 떼까지도 금식을 시키며 모두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구원받은 그 백성들의 모습을 본 요나가, 불평하고 원망하여, 어떤 이야기를 늘어놓습니까?

2-3절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읽어드리면 그 의미가 쉽게 와 닿을 것입니다. 야훼께 기도했다. "야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러니 야훼님, 당장 이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요나가 왜 다시스로 도망가려 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밝히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보고 벌하시려고 하다가도, 악인들이 뉘우치고 회개하면 다시금 그들을 품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제가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려했던 것이라고, 자기를 항변하는 것이죠.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이 구원받는 게 싫은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실 요나는 그 전까지만 해도 궁중 자문관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고, 이스라엘 나라에서 대접받는 선지자였죠. 열왕기하 14장 2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국토가 회복될 것이라는 요나의 예언이 나옵니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요나의 이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겠죠. 그런데 요나가 예언한대로 성취되려면 앗수르가 망해야 하고, 니느웨가 재앙으로 망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요나가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 까닭에 니느웨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 요나로서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고, 그 앗수르 제국은 언제라도 이스라엘 나라를 침략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요나는 차리라 그 앗수르 제국도 망하고, 그들의 수도인 니느웨 백성들도 다 멸망당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미션 앞에 순종하기가 꺼렸던 것이고, 그로 인해 풍랑을 만나 고기 백 속에 들어가 회개하고서, 다시금 하나님의 미션 앞에 순종하긴 했지만, 그가 어떻게 외쳤는지, 어제 읽은 요나서 3장 4절에 나와 있죠.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이 부분을 읽으면 요나가 하나님의 선지자 답게 니느웨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외치는 요나의 심정에는 드러나지 않은 속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40일이 지나면 당신네들 성읍은 무너질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이제 속으로 요나가 뭐라고 외쳤겠습니까? 그러니 회개하려면 하고 회개 하지 않아도 좋고. 당신들 맘대로 좋을 대로 하세요.’하는 속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지극히 자기 국가적인 관점, 자기 주변 정세의 관점, 자기 국수주의적인 관점 때문에 그런 마음을 지녔던 것이죠.

그런데 웬걸? 회개하든지 말든지 상관치 않고 40일이 지나면 당신네들 성읍이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모든 백성들과 짐승떼까지 회개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려주시는 그 모습을 보고서, 요나도 깜짝 놀란 것 아닙니까?

그 까닭에 요나가 오늘 4장을 통해 불평과 원망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죠. 지극히 자기 개인주의적인 신앙관점에 치우진 불평과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만인의 하나님이시고, 다른 나라 백성들도 살려주고자 하시는 마음이고, 그들도 얼마든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는데도, 요나는 자기중심적이고 편협적인 신앙관에 치우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신앙관을 자기 성공의 도구, 왕과 문무백관과 백성들 앞에서 인정받는 성공의 도구로 자기 신앙관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자기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일으키십니까? 본문 5절에 보면 요나가 성읍 동쪽에 나가 초막을 짓고, 니느웨 성읍이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하는데, 박넝쿨 하나를 하나님께서 요나의 초막 위에 보내서 요나를 가리게 해 주죠.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그런 상황에 박넝쿨이 햇빛을 가려주니, 그 그늘 아래에 있는 요나가 얼마나 기쁘고 좋아겠습니까?

 

그런데 본문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보낸 벌레가 그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하죠. 그로 인해 그 그늘이 사라졌고, 요나는 그 박넝쿨 하나가 없어졌다고, 자기를 가려주는 그 박넝쿨이 사라졌다면서 또다시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10-11절을 통해 말씀하시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너를 위한 박넝쿨 하나 때문에 좋았다가 분을 냈다가 하지만, 저 니느웨 성읍에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 곧 어린 아이들이 12만 명이나 된다고, 그런 아이들을 내가 심판한다는 게 말이나 되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개인주의적인 신앙관에서 탈피하여, 만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달라는 주문인 셈이죠.

이것은 요나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이런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나를 힘들게 하고 나보다 악하고 죄악된 삶을 살아가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으시는가? 평소에는 나보다도 훨씬 신실치 못한데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일에는 앞장서서 기도하는 그를 왜 하나님께서는 복 주시는가? 이런 비슷한 상황을 하나님께서 연출하실 때가 있다는 것이죠. 그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사실은 그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내 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5장 45절의 말씀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개인적인 신앙관보다도 만인을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 그것을 하나니께서 우리에게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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