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질문대답BibleQ&A/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내용을 썼는가?

by 권또또 2021. 7. 8.
728x90
반응형
The conversion of Saint Paul, Benjamin Gerritsz Cuyp(Dutch, 1612–1652)

갈라디아서를 누가 썼는지, 왜 썼는지, 그것이 중요하죠.

그래야 갈라디아서를 통해 주님께서 이야기하고자 하신 바를 바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갈라디아서는 오늘 1장 1-2절과 5장 2절을 통해 ‘바울’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썼다고 밝혀줍니다. 그렇다면 언제 썼을까요?
성서학자들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 에베소에서 머물던 때였거나, 그 직후의 고린도에 머물 때, 썼다고 말합니다. 다른 성서학자들은 바울이 1차 선교여행 후 제1회 예루살렘 공의회가 끝난 직후에 썼다고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6절의 말씀처럼,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서 “속히 떠나” 버렸기 때문이죠.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돌아왔는데, 그 교회 안에 거짓 사도들 곧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침투해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흔들어놓았고, 바울의 사도됨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안을 토대로 이 편지를 속히 써서 보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갈라디아 교회들이 세워졌을까요?

바울은 10대 시절 길리기아 다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유학을 왔고, 30대 초반까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모든 율법을 다 배웠습니다. 그의 나이 34살 무렵, 곧 A.D.34년에 산헤드 의장의 직인을 받아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을 색출코자 체포조를 이끌고 길을 가다가 주님을 만나죠. 그 뒤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 경건훈련을 마치고, 다메섹으로 왔지만 여의치 않자, 예루살렘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베드로 곧 게바와 야고보 사도를 만났다고 오늘 1장 18-19절에서 말하죠. 문제는 그 누구도 바울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했죠. 그때 구브로 출신의 바나바가 바울을 고향 다로소 보내주죠. 바울은 다소에서 7년간 칩거하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 무렵 주님의 영에 이끌려 셋째 하늘(고후12:2) 곧 낙원을 보는 환상과 계시의 체험을 하죠. 그리고 그때 해발 2천m의 아마노스 산맥을 넘어 걸어 온 바나바에 의해 수리아의 안디옥교회로 가서 공동담임목회자로 섬기게 되죠.

3년간 수리아안디옥교회를 섬길 즈음, 성령님의 이끄심에 이끌려 제 1차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사도행전 13-14장에 나오는 이야기죠. 그때가 바울의 나이 47살 곧 A.D.47년의 일이었죠. 그때 선교팀장은 바나바였고, 그 일행은 수리아안디옥교회 아래 위치한 실루기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섬으로 가죠.. 바나바의 고향으로 맨 먼저 간 것이죠. 구브로 섬에 있는 살라미에서 바나바의 조차 요한 마가를 만나 수행원으로 삼고, ‘바보’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거짓 선지자요 마술사 바예수의 눈을 멀게 한 일도 있었죠. 그 후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 ‘버가’에 도착하는데, 해안가의 바람 때문에 바울이 몸살을 앓죠. 하지만 그래도 바울은 곧바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자고 하죠. 그런데 험산준령의 타우로스 산맥 앞에서 그만 바나바의 조카 요한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죠. 그러나 바울은 아픈 몸을 이끌고 그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당도하죠. 그때부터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선교팀의 팀장도 바울로 바뀌죠. 바울은 일행을 이끌고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곳에는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이방인 가운데 유대교에 입교한 이들도 있었죠,. 다만 그들은 유대인의 율법과 행위에 관한 말씀만 들어왔던 터였죠.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곧 생명과 자유의 복음을 전하죠. 그러자 그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그 복음을 전해 줄 것을 요청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반대 세력들은 그곳의 유력자들을 선동해 바울 일행을 몰아내버렸죠.

그때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남서쪽으로 180km떨어진 ‘이고니온’ 지역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지만,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들처럼 반대하는 세력들이 등장합니다. 심지어 그 유대인들은 바울을 돌로 치려고 할 기세였죠.
그러자 바울은 일행과 함께 그곳에서 ‘루스드라’로 옮겨가죠. 그곳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하는 역사가 일어났죠. 그러자 많은 시민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떠받들려고 하는데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에 불과하다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를 돌리게 하죠. 문제는 비디시아 안디옥의 유대인들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찾아와 바울을 돌로 쳐 죽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성 밖에 내쳐진 바울이 다시금 살아나게 되고, 루스드라 성읍에 다시 들어가 복음을 전하죠. 그 뒤에 더베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죠.

그리고 더베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 일행은 이전의 지역들을 역으로 돌아오면서 주님의 제자들을 믿음 안에서 굳게 하도록 격려하고, 버가의 아래 지역인 앗달리아 항구에서 배타고 최초 공동목회지인 수리아안디옥교회로 돌아옵니다. 그것이 총 2240km에 걸친 3년의 제1차 전도여행이었고, 그때 바로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을 세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A.D.50년 무렵이죠.

그런데 수리아안디옥교회에 돌아와 교회를 섬기는데, 안디옥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이 침투해 들어와 엉뚱한 구원의 교리를 퍼트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외에 할례와 같은 율법의 행위가 수반돼야 한다면서 말이죠. 그 일로 교회 안에 논쟁과 분열이 생겼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 문제를 가지고 예루살렘교회로 가서 보고하죠. 바로 그때 열린 게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였습니다. 그때 의장은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사도였는데, 여러 논의 끝에 야고보 의장은 우상과 음행과 짐승의 피에 관한 부분 외에는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금하지 말도록 매듭을 짓습니다. 구원은 율법주의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고, 다만 구원받은 이후엔 몸과 영혼을 깨끗케 하는 차원에서 우상과 음행과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렇게 매듭짓는 것을 토대로 해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속히 써서 갈라디아교회들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들을 떠나왔을 때, 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복음에서 ‘속히 떠나’ 율법주의의 교리에 빠져들었고, 바울의 사도성을 폄하하고 비난한 율법주의자들에게 교인들이 넘어간 상황이라고, 그것을 차단코자 했던 것입니다.

위 내용의 바울에 관해 더 깊이 알고자 한다면 아래 책을 참조하세요

안아줌, 그 깊은 사랑

작은 교회의 목사가 길어올린 영감의 글. 2019년 일 년 동안 교우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또 함께 울었던 일들, 1년간 읽었던 책들, 그리고 새벽예배를 준비하며 말씀 묵상한 내용, 그것들을 토대로

www.aladin.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