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3-10)

by 똑똑이채널 2025. 2. 5.
반응형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hwp
0.18MB

 

 

(설교열기)(논지)우리는 2천년 전의 기독교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네로 황제의 핍박 속에서 다들 고문 당하고 죽어간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번 만 주님을 모른다고 배교하고 부인하면 살려 줄 텐데 그들 모두는 죽음을 맞했습니다.

누군가는 콜롯세움의 원형경기장 안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고 누군가는 로마의 어둠을 밝히는 화형불로 사라졌습니다.

 

(깨달음)왜 그들이 사자의 밥이 되고 화형불로 사라지는 걸 기꺼이 받아들였습니까?

죽음 너머에 영원한 부활이 있을 것을 소망했기 때문이죠.

그 소망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 그전부터 여인들과 열두 사도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그들이 믿고 체험했기 때문에 원형경기장의 사자밥에 되는 것도 화형불로 사라지는 것도 당당하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적용)바로 그와 같은 그들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복음의 증거자들로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바꿔말해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자들은 그 복음이 생명의 복음임을 알고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으로 사라지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로만 남는 게 아니라 진리와 생명으로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오늘 우리도 새 생명을 얻는 자라면, 그 복음이 진실로 내게 역사적인 혁명과 같은 일이라면, 우리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로 물든 이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은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싶어 선택한 게 아니라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듯, 주님께서 그 은혜로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008532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역배)고린도전서 11∼14장까지는 공적 예배에 대한 사도 바울의 목회적 답변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12∼14장까지는 바른 은사의 사용에 대한 답변이었죠.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관한 내용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부분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답을 할 때 그 내용을 밝혔는데 고린도전서 15장은 그게 없습니다.

그만큼 고린도전서 15장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한 것에 답변한 게 아니라 바울이 그 문제를 미리 알고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부활을 실제로 믿지 않은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바로 잡아주고자 쓴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혼불멸설을 믿는 것과 부활신앙은 절대로 같은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조상 귀신을 믿는 사람들은 명절이 다가오는 날엔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죠.

구천을 떠돌던 조상들이 명절날이 되면 밥을 먹으로 온다면서 말이죠.

그것이 영혼불멸설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죽음 이후에 영혼이 낙원으로 가고, 주님의 재림 이후에 우리의 육체는 아담이 죄짓기 이전의 육체로 회복되는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영혼불멸설과는 다른 참된 부활신앙이요 그 신앙을 갖고 살 때 육체를 갖고 있는 동안에도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은 부활신앙의 복음을 ‘굳게 지키라’는 것이죠.

유치원의 보모라면 그 아이가 상하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이죠.

그만큼 우리가 복음을 굳게 지킨다는 것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인해 부활하신 주님이 더 돋보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질문했을 때 그들이 확고하게 대답하길 원했던 바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복음을 확고히 믿고 있습니까?”

“네. 우리는 그 영혼불멸설이 아니라 부활신앙을 굳게 붙잡고 살겠습니다.”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답변도 그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주님의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세상 것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영원불멸설이 아니라 오직 부활신앙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말씀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복음에 기초를 두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목적으로 하는 것 말입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누구에게 보여주셨는지를 밝혀주는데 3-4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원해)여기에 ‘성경대로’란 말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헬라어로 ‘그라페’(γραφή)입니다.

정확히는 ‘성경들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신다는 것이 성경 한 군데에만 기록돼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죠.

구약 여기저기에 기록돼 있는 그대로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깨달음)바울이 받은 것은 주님의 복음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것이 생명과 진리의 복음이죠.

그 복음을 고린도에 들어가 전했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을 받게 되면 그것을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복음은 살아 있는 힘이기 때문이죠.

살아 있는 생명은 그 자체로 움직이게 돼 있습니다.

어떻게든 강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만났다면 그 복음의 힘과 능력을 통로 삼아 흘러가게 해야 되는 것이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데도 한 번도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직까지 복음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있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은 것이라고 바울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 임의대로 죽은 게 아니라 ‘성경대로’ 죽은 것이라고 말하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899457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product.kyobobook.co.kr

 

(깨달음)그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죽음을 깨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가사상태에 빼져 있다가 다시 살아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시신 상태에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이죠.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우리도 머잖아 죽게 될 때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죠.

주님처럼 다시금 부활할 수 있는 소망을 불어넣어주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주님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본문) 본문 5-9절입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깨달음)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 주신 그 모습을 밝혀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게바는 베드로의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베드로에게 보이셨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맨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여자들에게 보여주셨죠.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자라고 하지 않고 게바에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여자들에게가 보이셨다는 것보다 지금 부활을 믿지 않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영향력 있는 베드로에게 보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들에게 보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거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이 기록을 제외하고 베드로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증거는 그들의 삶에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실 때 제자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죠.

그때 요한을 제외하고 모든 제자들은 빠져나갔죠.

그런데 그 이후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그토록 겁에 질려 방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있던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담대하게 증언하기 시작했죠.

심지어 산헤드린 의원들이 체포하고 협박을 해도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할 정도였죠.

그만큼 부활의 확신을 갖고 있는 자들은 그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여인들과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만 보인 게 아니라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합니다.바울이 말한 ‘오백여 형제’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개인이나 제자들과 같은 소그룹뿐만 아니라 일시에 오백명이나 되는 큰 무리에게 보여주셨다는 것이죠.

그그들은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이 편지를 쓸 때까지 모두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product.kyobobook.co.kr

 

 

(원성)그리고 야고보에게 보이셨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가르침에 놀랐죠.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13:55-57)

 

분명 목수로서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었는데 어디서 그런 지혜가 나오는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사렛 사람들이 놀란 것이죠.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때는 동정녀로 잉태하고 낳았지만 다른 동생들은 요셉과 부부관계를 통해 낳았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고서도 요셉과 동침을 하지 않았다고 하죠.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마리아의 친자식이 아니라 사촌으로 보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고 다 마리아의 친자식들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육적인 사이에 무슨 관련성이 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신적인 아들이고 그 밑의 동생들은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태어난 육적인 백성이라는 것이죠.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독생자요 그 밑의 동생들은 인간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동생 야고보에게 찾아가서 당신의 부활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공생애 사역을 할 때만 해도 다들 예수님을 미쳤다고 정신병자 취급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야고보도 품으신 것이죠.

 

그리고 ‘모든 사도에게와’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바울이 말한 사도란 12사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아니라 복음에 빚을 져서 전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죠.

그리스도안에서 사도된 자로 여기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 자신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보여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라고 말합니다.

왜 자기를 만삭되지 못한 자로 표현했겠습니까?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같아 살았죠.

그들에게 주님께서 부활을 보여주신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느닷없이 부활하신 주님께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을 빚 대어서 만삭되지 못한 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더욱이 본문 9절에서는 자신이 지극히 작은 자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자요, 그래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핍박한 것은 그 당시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서 예루살렘으로 연행하는 앞잡이였죠.

그런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여주셨고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할 자라고 겸손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10절에 그렇게 밝혀준 것 아닙니까?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이죠.

바울은 과거에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주님의 사도가 된 것은 현재형입니다.

과거의 관점으로 현재를 조망하면 자신의 현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용)이것은 사도 바울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 아니겠습니까?

다만 사도 바울과 우리의 차이가 있다면 사도 바울은 늘 고백하고 새기면서 살았지만 우리는 가끔씩 잊고 지낸다는 것이죠.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미래를 향해서 달려갑니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뒤를 돌아봐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을 되돌아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낙원한 것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을 돌아볼 때에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가 있다면 나의 과거를 확인하기 위해서 되돌아봐야 합니다.

바로 나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볼 때에만 내가 기적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본문에 ‘은혜’가 두 번씩이나 나왔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그만큼 헛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아는 자는 복음을 위해 수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7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product.kyobobook.co.kr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죄로 물든 나에게도 부활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그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고 화형불에 타들어간 이들이 무엇 때문에 그 죽음을 받아들인 것 알고 있지 않느냐?”

그들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다시 살아나는 부활과 영생이 있음을 바라봤기 때문이지 않더냐?”

바울이 지금 부활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부활신앙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더냐?”

주님이 십자가에 무력하게 죽으실때는 12제자들도 다 도망치고 방문을 꽁꽁걸어잠궜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담대한 삶으로 변화되지 않았더냐?”

심지어 산헤드린 의원들이 감옥에 넣고 협박할지라도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열 두 사도와 5백여 형제와 야고보와 바울에게 보여주셨듯이 오늘 너에게도 보여주고 계시지 않느냐?”

네 삶의 환경 속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너를 선택하신 것도 그 증거요, 네 삶 가운데 꿈과 계시와 환상을 통해 보여주고 계시지 않느냐?”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너에게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신 것보다 역사적인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네 인생이 새롭게 되고 영원을 꿈꾸며 살게 되었으니 이제 너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를 주님께서 바라지 않겠느냐?”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 너도 이 세상의 흐름과 유혹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담대한 부활증인으로 살기를 주님께서 바라지 않겠느냐?”

 

(찬양)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서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 땅가득해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찬송가운데 서신 주님

주님의 얼굴을 온 세상 향하네 권능의 팔을 드셨네

주의 영광 이 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린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하늘 아버지 우릴 새롭게 하사 열방중에서 주를 섬기게 하소서

모든 나라 일어나 찬송부르며 영광의 주님을 보게 하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천년전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또 화형장에서 죽음을 받아들인 순교자들은 모두 부활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찾와주시고 거부할 수 없는 은혜로 감싸주셨기 때문이죠.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 은혜로 불러주시고 찾아와주시고 만나주셔서 구원받은 자녀로 살고 있는 줄 믿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부활의 은혜를 일깨워주고 그 은혜 안에 살도록 권고한 것도 마찬가지죠.

지금도 부활의 감격과 은혜 속에 거하는 자들은 이 세상의 물결을 거슬로 담대한 증인으로 사는 자들이 인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008532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