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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나예)오늘 오후에 광주에서 목회는 후배 목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예전에 전주대학교 총학생회를 이끌 때 함께 하던 동료가 죽었다고 말이죠.
40대 중반인데 간경화로 죽었다고 말이죠.
불과 4년 전에 봤지만 그렇게 갑작스레 죽을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례식장에 갔는데 장례식장이 썰렁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속담 하나를 말해줬습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 가도 정승이 죽으면 가지 않는다”하는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나도 처음 듣는 말인데 속 뜻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정승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잘 보이려고 개가 죽어도 찾아가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이제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문상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죽음이 실은 그토록 허망하고 쓸쓸한 것이죠.
(깨달음)그런데 후배 목사가 광주에서 전주를 거쳐 일산까지 함께 총학생회 둉료들과 함께 찾아가서 장례식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누님되는 분이 너무나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적용)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아무리 유창한 설교를 하고 방언을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더욱이 살아 있을 때 더 사랑을 베풀고 나눠야지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살아 있는 날 동안 더 많이 베풀고 나누고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고린도 전서 13장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헌 중 가장 아름다운 찬가입니다.
그 어떤 대문호도 바울이 쓴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필적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을 통해 사랑의 필수성, 사랑의 특성, 사랑의 영원성을 간결하고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고린도 전서 13장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교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3장을 왜 썼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동기와 배경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죠.
사실 고린도전서 13장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쓴 편지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사를 받았는데 서로 대립하고 분열을 일삼았죠.
주님의 몸된 지체로 서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만큼 고린도전서 13장은 교회 공동체를 향한 관점으로 썼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알콜 중독자라면 어떻겠습니까?
날마다 술을 마시고 폭행을 한다면 말입니다.
그때 아내가 ‘사랑은 오래 참는거야’하면서 오래 참는다면 그것이 능사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그것은 그 남편을 향한 직무 유기입니다.
알콜 중독자인 남편을 치료시키는 것, 바로 그것이 남편도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길이죠.
내가 일하는 곳에 불한당이 찾아와서 기물을 파기하고 난리를 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때 ‘사랑은 온유합니다.’하면서 가만히 지켜만 봐야 할까요?
적군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와서 난동을 피우고 여자들을 유린하고 폭행하고 재산을 빼앗아 가는데 말입니다.
그때는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함께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죠.
바로 그런 관점처럼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면서 고린도전서 13장을 바울이 써내려갔다는 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 시간에 살펴본 1절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깨달음)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로 받은 방언을 최고로 여기며 과시용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방언이든 예언이든 병을 고치는 것이든 그 모든 것은 성령님이 선물로 주신 은사죠.
결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상대방의 유익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방언이나 천사의 말이나 둘 다 헬라어로 ‘글로사’(γλῶσσα)인데 ‘혀’(the tongue)죠.
천사의 말도 혀로 하는 것이고 사람의 말도 혀로 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그 방언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온 오순절날 임한 방언은 세계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 듣는 인간의 언어였습니다.
그때 방언을 주신 목적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라는 것, 곧 관계의 지평을 넓히도록 주신 것이죠.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주신 방언의 목적인 무엇이겠습니까?
그 방언으로 뽐내고 자기 자랑을 삼으라는 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이죠.
문제는 고린도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이방 신전 앞에서 제사하고 기도할 때 행하는 풍습을 그대로 교회 안에 가지고 온 것이죠.
아프로디테 신전 앞에서 제사하고 기도할 때 브람스를 부르고 심벌을 치고 굉음을 지르며 광란의 굿판을 벌이듯 말이죠.
그것을 그대로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었으니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던 이들에게 덕이 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이 권면하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천사의 방언을 한다 하지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꾕꽈리가 되고 만다고 말이죠.
그야말로 단순한 공기의 진동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
사랑이 없으면 이방 신전에서 악기를 두드리고 소리치는 소음과 똑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적용)그래서 가족 간에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려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예배를 드리면서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이방 신전에서 두르는 소음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비록 유창한 방언을 하지 못한다 해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최고이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그 심령 속에 함께 거하시고 그런 자들의 예배와 기도를 기쁨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본문)오늘 본문 2-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원해)이 말씀을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그런 말씀입니다.
“내가 예언을 선물로 받고 모든 비밀을 알고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비록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도 내 몸을 불태운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까?
개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비행기를 타고 가고 배를 타고 가는 게 완전한 비밀처럼 신비스러운 일이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깊은 영적인 비밀을 성령님을 통해 깨달아 안다고 할지라도 어떻다는 것입니까?
사랑이 없으면 너는 nothing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달산을 향해 소리치면 유달산이 바다에 빠지는 능력을 지녔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사랑이 없으면 nothing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이죠.
(원해2)우리말 ‘구제한다’는 헬라어 ‘프소미소’(ψωμίζω)는 사람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것을 말합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정성스럽게 그 사람 입에 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고 남의 입 속에 정성스럽게 넣어 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더욱이 자기 몸을 불태우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좋게 하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칭송받을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사랑이 없이 자기 자랑 자기 공명심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그 역시 nothing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모든 일들이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먹이고 베풀고 따뜻하게 하는 모든 일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사랑의 필수성입니다.
(깨달음)바울이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어느 지체든 자기를 위해 있지 않고 다른 지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죠.
코도 코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입과 눈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듯이 말이죠.
팔도 양쪽에 두 개인데 한 쪽이 약하면 다른 쪽이 지탱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따로 국밥처럼 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영적 능력과 비밀과 지식을 갖고 있어도 서로 살아하지 않으면 주님의 몸된 지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령님이 방언을 주셨고 예언하는 능력과 영적 비밀과 구제할 수 있는 은사를 선물로 주셨다면 거기에 기필고 사랑이 깃들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그 모든 은사를 자기만을 위해 자랑하듯이 사용하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nothing 아무 것도 아니요, 그야말로 주님께서 떨어져나간 마른 막대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상대방의 유익과 덕을 베푸는 사랑을 위해 각양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사람은 태어날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지 않느냐?”
“40대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이 세상을 이별할지 누가 짐작이나 했겠느냐?”
“젊은날에 죽은 그를 안타까워하며 쓸쓸할 장례식장을 찾아간 후배 목회자와 동료들이 그래도 사랑이 있는 것 아니었겠느냐?”
“이 땅 위에 살아 있는 날 동안 그 무엇보다도 사랑만이 가장 기억에 남고 사랑만이 남에게 유익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바울도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주신 각양 은사를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으로 섬기는데 사용토록 권면한 것 아니겠느냐?”
“사랑이 없는 예언도 능력도 비밀도 지식도 구제도 불태우는 것도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이 없는 유창한 방언이 이방 신전의 굉음이요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면 사랑으로 배려하는 방언이 귀한 것 아니겠느냐?”
“너에게 유달산을 옮길만한 큰 능력이 있어도 상대방을 사랑하고 섬기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겠느냐?”
“네가 성령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며 놀라운 비밀과 지식을 안다고 해도 사랑하지 않고 뽐내는 것이라면 실은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겠느냐?”
“비록 방언도 못하고 능력도 없고 영적이 비밀도 모른다고 해도 묵묵히 상대방을 사랑으로 섬긴다면 그 사람이 주님께 칭찬받는 종이지 않겠느냐?”
(찬양)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없으면 소용이 없고
심오한 진리 깨달은 자도 울리는 징과 같네
하나님 말씀 전한다 해도 그 무슨 소용있나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무례와 사심 품지않으며
모든것 믿고 바라는 사랑 모든것 덮어주네
하나님 말씀 전한다 해도 그 무슨 소용있나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 때는 주를 만나게 되리
하나님 나를 알고 계시듯 우리도 주를 알리
하나님 말씀 전한다 해도 그 무슨 소용있나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 위에 사는 날 동안 그 어떤 방언도 그 어떤 능력도 그 어떤 비밀도 그 어떤 구제도 사랑이 수반될 때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법이죠.
사랑이 없는 방언이나 은사나 능력이나 깊음이나 비밀이나 구제는 결국 자기 자랑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방언도 못하고 은사도 없고 능력도 비밀도 영적 지식도 그리고 구제도 잘 못한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최고인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 위에 살면서 사랑으로 사람들을 돌보셨고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 조차도 끝까지 사랑으로 섬겼으니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사랑으로 섬기고 나누고 베푸는 것이 그 어떤 은사보다도 가장 귀한 은사인 줄 믿습니다.
그런 주님의 사랑을 베푸는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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