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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장과 6장은 고린도교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육신에 속한 자였죠. 영적인 미숙아였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며 왕노릇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기준에 따라 살뿐이고, 그것이 도덕적인 해이로 흘러온 것이죠. 어제 읽은 고린도전서 5장 1-5절에는 자기 아버지의 아내 곧 첩이나 계모와 음행한 자가 있었죠. 그런 자에 대해 사도 바울이 출교시키라고 명령을 하죠. 그것은 단순히 그를 내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6절 말씀이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은 그들이 서로 자랑하고 있는 게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죠. 누룩은 극히 미량인데 이것이 자기보다 몇 천 배 되는 반죽을 발효시키죠. 마태복음 13장 33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천국을 누룩과 같다고 비유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폭발력, 확산력을 누룩에 비유한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누룩은 ‘죄’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복음이나 죄는 둘 다 확산력과 폭발력을 지니고 있죠. 하지만 복음은 사람을 사리는 쪽으로, 죄는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확산력과 폭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온갖 죄의 덩어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문제는 개의치 않고 세상 것들로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가리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하며 정체성을 확인시켜 줍니다. 너희들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너희는 누룩없는 자여야 한다, 하고 간곡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하고 말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누룩 없는 자가 되고,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이 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옛 삶을 끊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네가 너희에게 쓴 것’이란 지금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현재형으로 쓰고 있는 것인데, 그 편지를 ‘너희에게 쓴 편지에 ’라고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편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편지는 언제 썼고,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궁금할 것 같지만 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에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단지 그 전에 쓴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 될 뿐, 우리가 알아야 될 내용은 지금의 고린도전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그 이전 편지에서도 사도 바울이 그런 이야기를 썼다는 것입니다.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음행하는 것이란, 단순히 그 죄 자체를 범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음행과 같은 죄를 범한 자들을 다 일컫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다 홍해를 건너서 세례를 받은 자인데, 홍해 이 편에 살아야 될 사람들이 아직도 홍해 저편에서 머무적거리고 있는 자들, 묵은 누룩을 끊지 못하는 자들, 그들과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귀지 말라’ 하는 헬라어 단어가 ‘쉬나나믹뉴미’(συναναμίγνυμι)인데 ‘함께 섞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동화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복음도 확산되지만, 죄도 확산되고, 폭발력이 있는 것이죠. 죄가 던져주면 유혹의 힘이 강합니다. 그래서 죄를 벗하는 자와 그 곁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죄에 빠져들고 동화되는 것이죠.
그런데 사귀지 말라는 말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10절에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것이 이 세상 밖으로 나가라는 것인가? 이른바 수도원 생활이나 기도원 생활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죠. 여기에서 말하는 ‘음행하거나 탐하거나 우상숭배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는 자들’, 그래서 그들과 사귀지도 말라는 것은 세상 밖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형제자매라고 하는 사람 중에,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 중에, 공공연히 죄와 벗하는 자가 있거든, 그런 자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여기에서 교회 내에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고 탐욕을 부리고, 우상숭배하고, 모욕을 주고, 술취하고, 속여 빼앗는 자’라면, 그런 자와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합니다. 왜요? 그런 자들은 순전함과 거룩함을 훼방하는 자요, 영적으로 미숙함을 넘어 자기 배만 부르게 하겠다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런 자들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한 그 6 가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 가운데, 누구를 사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겠습니까? 그 안에서 몇 사람이나 사귈 수 있겠습니까? 거꾸로 본다면,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거리낌 없이 사귀어도 좋을 사람으로 생각해 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죠. 나는 이 6가지에서 다 벗어나 있는 자인가, 하고 말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여기에서 말하는 ‘외인들’이란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 밖 사람들을 나는 판단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죠? 13절에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세상 밖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 주님의 빛이 되어 주고 전도를 하지만, 끝내 그들을 심판할 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교회 내 사람들이야’, 한 교회 지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죄 된 삶을 살고 있다면, 너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정말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뜻입니다.
13절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여기에서 ‘내 쫓으라’하는 말은 ‘2인칭 복수형’입니다. 문제가 있는 교인 한 사람을 네가 보고, 네가 판단해서 내 쫓으라,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희들 모두가 다 한 마음이 되어 내어 쫓으라’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특정한 사람을 미워해서 그 사람을 비판하고 쫓아내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모든 교인들이 모여서 한 사람으로 그를 쫓아내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 그 사람의 죄를 고지할 것이고, 교회의 순결성을 위해 그를 내 쫓자고 하겠죠. 그러면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한다고 하고, 제창합니다, 할 것 같나요? 그렇지 않죠. 세상 사람들은 그 죄를 판단하고 내 쫓겠지만, 성령님은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행하시기 때문에 그를 불쌍히 여기라고 할 수 있죠.
그때 누군가 나서서 우리 중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칩시다, 하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음행하지 말고, 탐하지 말고, 우상숭배하지 말고, 술 취하지 말고, 토색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떳떳한 사람만 돌로 칩시다, 하고 말이죠. 그러면 다들 자기 수치를 느끼는 일이 되는 것이죠. 그로 인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요. 그래서 그 사람조차도 성령님의 감동 속에서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5장의 큰 틀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출교하라’ ‘내 쫓으라’,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런 과정을 통해 그 사람을 바르게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의 ‘내 쫓으라’는 말씀과 7절의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는 말이 같은 것이죠. 누군가 잘못한 사람을 내어 쫓으라는 것은 그 사람을 내어 쫓기 전에 내 속에 있는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 쫓으라는 것은, 죄를 지은 자에게 동화되지 말라는 일차적인 뜻도 있지만,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유월절 어린양을 좇아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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