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DewSermon/히브리서

은혜의 보좌 앞에(히4:1-16)

똑똑이채널 2025. 4. 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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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3장으로 이루어진 히브리서는 변증문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변증문이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논리정연하게 쓰는 글입니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으로 알려진 바울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탁월성”을 히브리서에서 변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민족의 천사보다도, 모세보다도, 여호수아보다도, 대제사장보다도, 더 우월하다고 월등한 분이라고 말입니다.

왜 바울이 그런 설명을 해 나가는 것입니까? 왜 바울은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숱한 존재들과 비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밝히는 것입니까?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종교 곧 유대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요, 대신에 기독교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로마 황제의 핍박이 거세자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이 과거 유대교로 돌아가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바울이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그들이 줄곧 믿어왔던 유대종교의 한계를 역설하고, 기독교의 우월성 곧 세계 역사를 주도하는 만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물고기의 물과 같았던 천사나 모세나 아론이나 대제사장까지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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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오늘 읽은 히브리서 4장은 하나님의 “안식”을 구원과 연결하여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안식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안식은 ‘샤바트’입니다. 그런데 ‘샤바트’는 ‘돌아가다’는 뜻의 ‘슈브’와 ‘십자가’ 또는 ‘언약’을 뜻하는 ‘타브’의 합성어입니다. 참된 안식은 ‘십자가 위에서의 안식’ 곧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돌아가는 안식’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언약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 7일 안식일교회는 지금도 안식일 곧 구약의 안식일이자 유대인들이 추구하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죠. 만일 구약의 안식일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지킨다면 실제로 짐승을 잡아 죽이는 제사도 드려야 구약의 안식일을 따르는 길이겠죠.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죠. 토요일 날을 안식일로 여기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언제 안식하셨습니까? 제7일이죠.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7일에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종교차원에서 그렇게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저녁까지 안식일을 지키는 변형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7일에 안식하셨고, 예수님도 십자에서 죽으신 이후 안식후 첫날 곧 주일날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참된 ‘샤바트’ 참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안식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제7일째 안식하신 창세기의 그 안식의 날로 돌아가는 것, 오늘날 제 7일이자 부활의 날인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안식일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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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1-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있다는 말씀이죠. 누구를 칭하는 말일까요? 이른바 이집트에서 430년의 노예생활을 마친 히브리 민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동할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 말입니다. 왜 그랬다는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민수기를 읽을 때 살펴본 것처럼, 광야 행진한 지 3일 만에 바란 광야에 당도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죠. 그들이 40일간 정탐한 후에 보고를 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의 보고를 했죠. 그 땅에는 아낙자손들이 있어서 능히 정복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을 보고 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그것이 사실이지만, 그 땅에 아낙 자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를 하죠.

주일날 나눈 말씀을 통해 ‘믿음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믿음은 해석이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 절망으로 해석하는 이는 자살을 기하려고 하지만, 그 상황을 사명을 해석하는 이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고 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사생아로 태어나고 8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중학생 때 마약을 입에 대고 살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절망을 사명으로 해석하며 살아갈 때 지금의 그녀가 존재할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가나안의 10명의 정탐꾼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모습을 해석했더라면, 그들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 불평하고 원망한 출애굽 1세대는 죽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의 해석, 말씀에 입각한 해석을 하지 않고 자의적인 판단을 해석했기에 참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죠.

 

그래서 본문 12-13절을 통해 그 말씀으로 해석하며 살아가는 자만 참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참된 안식은 말씀으로 해석하여 믿음으로 나아갈 때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예수님도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시죠. 그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것이 샤바트, 곧 안식이라고 했습니다. 그 언약의 말씀으로 해석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의 안식과 평안은 말씀으로 해석하며 사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삶은 녹녹치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말씀을 해석할 때 그 속에서 자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깨면서까지, 우리를 새롭게 빚어주신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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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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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 마지막 부분인 14-16절을 통해 바울은 말씀의 주인이시고, 안식의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도록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 곧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에 나아가는 것, 그것이 곧 참된 안식의 상태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왜 바울이 이런 내용을 변증하는 것이겠습니까? 로마 황제가 너희들의 육신을 죽이고 억압시킨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자들의 영혼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안식의 궁극적인 면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떤 환경에처하든, 어떤 억압과 핍박을 받더라도, 그 분의 은혜의 보좌, 곧 십자가와 부활로 나아가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구원 곧 영원한 안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물질로부터 참된 안식이 나올 수 없고 그 어떤 권력도 영원한 안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 영원한 안식은 십자가와 부활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에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 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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